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반기문 테마주들이 폭락하고 있다. 기업 실적과 상관없는 정치 테마주에 대한 무분별한 투자는 위험한 결과로 이어지기 마련이라는 게 전문가들 조언이다.
2일 유가증권시장에서 반기문 테마주로 일컫는 종목들은 개장부터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성문전자는 전날보다 29.85% 하락해 4,160원까지 떨어졌고, 한창 역시 가격제한폭인 29.94%까지 급락해 2,715원에 거래를 마쳤다. 성문전자는 신준섭 전무가 반 전 총장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반기문 테마주로 분류돼 왔다. 한창은 최승환 대표가 유엔 환경계획 상임위원으로 재직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반기문 테마주로 불렸다. 반 전 총장의 외조카가 대표이사로 있는 지엔코도 3,530원(-29.82%)까지 급락했다.
반 전 총장이 전날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한 시간은 주식시장 마감 직후인 오후 3시30분이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시간외 거래대금은 783억5,100만원이었다. 1월 평균 거래대금(305억6,200만원)보다 2배 이상 많은 규모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충격이 전해진 지난해 6월 24일(657억7,500만원) 이후 최대치다. 매도 물량이 갑자기 쏟아지면서 잔량도 급증했다. 지엔코는 425만주, 성문전자는 220만주가 거래가 성사되지 않은 채 쌓였다.
반면 이날 ‘황교안 테마주’는 부상했다. 코스닥 종목 인터엠은 조순구 대표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같은 성균관대 동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날 하루 동안 9.93%나 올라 6,75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문재인 테마주도 강세를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치의인 이상호 우리들병원장의 부인이 대주주라는 이유로 문재인 테마주로 분류된 우리들제약의 주가는 1년 간 6,770원에서 16,900원으로 상승했다.
정치테마주는 그러나 ‘개미들의 무덤’이라고 불릴 만큼 위험한 투자대상이다. 불확실한 정보와 주관적 판단에 기댈 뿐 기업 가치에 대한 합리적 분석은 빠져있기 때문이다. 반 전 총장의 고향인 충북 지역에서 케이블 TV 방송사를 운영 중이라는 이유로 반기문 테마주로 엮인 씨씨에스처럼 황당한 사례도 적잖다.
한국거래소의 최근 조사도 정치테마주 투자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거래소에 따르면 시장 전체의 개인투자자 비중은 65%지만 정치테마주에서는 개인 투자자 비중이 97%로 압도적이다. 기관과 외국인 비중은 3% 미만이란 이야기다. 또 정치테마주에 투자한 개인의 73%(계좌 기준)가 정보력 부재와 뇌동매매로 손실을 입었다. 거래대금 5,000만원 이상의 고액투자자 손실 계좌 비율도 93%에 달했다. 구용옥 미래에셋대우 리서치센터장은 “정치 테마주는 급변동 가능성이 워낙 큰 만큼 소문만 듣고 투자하는 건 금물”이라며 “테마주라 하더라도 자율주행차와 같이 실체가 있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는 가치 투자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밝혔다. 권재희 기자 luden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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