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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도면의 숫자가 말해주는 것들

입력
2017.02.0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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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으려면 수많은 도면과 만나야 한다. 근교에 전원주택을 짓는다고 가정해보자. 건축주는 건축도면 말고도 토목도면이란 걸 보게 될 것이다. 제대로 짓고자 마음먹었다면 가구와 인테리어 도면도 같이 살펴봐야 한다. 법적으로 정해진 도면만으로는 좋은 집을 짓기 어렵다. 세부적인 부분을 보안해주는 상세한 도면들이 더 필요하다. 평면도, 입면도, 단면도에 나타나지 않는 부분들이 많은데, 이를 풀어낸 상세한 도면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공사현장에서는 알아서 멋있게(?) 처리해 버린다. 도면은 건축주와 건축가의 의도가 모두 들어있는 것이며, ‘이대로 지어주시오’라고 현장에 요구하는 자료다. 그러므로, 도면에는 가능한 모든 의견들이 그 속에 포함되어야 한다.

건축도면은 복잡한 수치와 선들로 가득하다. 건축, 구조, 설비, 전기 등의 내용이 사용설명서도 없이 기입되어 있다. 일반인들이 도면의 내용을 모두 이해하도록 하긴 어렵지만, 한가지는 꼭 말하고 싶다. 도면에 쓰이는 단위와 스케일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게 있다고.

건축은 mm 단위를 쓴다. 1m는 1,000mm로 표시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건축도면은 1850mm, 1500mm 등으로 뒷자리가 10단위로 떨어지도록 하기 때문에 결국 cm 단위인 셈이다. 재료의 크기, 시공성 등을 고려한 숫자들이다. 이건, ‘건축가가 cm 크기까지만 고민했어요. 더 작은 부분은 현장에서 알아서 해주세요.’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보다 더 자세한 부분까지 고민했다면 건축가는 상세도를 따로 그려 넣는다. 이때는 1/20 같은 식으로 표현되며 아주 정밀하게 표현된다. 여기에는 mm 단위의 작은 숫자까지도 표현된다. 이런 도면이 많다는 것은 건축가가 더 많은 고민을 했다는 이야기다.

토목도면은 m 단위를 쓴다. 토목도면에서 1000으로 표시된 것은 말 그대로 1000미터. 도로 같은 큰 대상을 다루기 때문에 m가 최소단위가 된 것이다. 토목회사에서 받은 도면을 보고 있노라면 크기의 혼란이 올 때가 종종 있다. 토목 도면은 스케일이 너무 커서 한 채의 작은 집은 대충 선으로 표시된다. 도면에서 집을 조금만 움직여도 실제는 1~2m를 이동하는 셈이다. 고민의 차원이 다르다.

가구나 인테리어 설계까지 하게 되면 드디어 1585mm 같이 mm 단위를 끝자리까지 제대로 쓰게 된다. 특히 가구들은 미세한 치수가 살짝만 바뀌어도 기능이나 느낌이 확 달라진다. 높이가 30mm인 의자와 50mm인 의자는 그 쓰임새가 아주 다르다. 아이를 위한 의자와 어른용 의자인 것이다. 폭이 55mm인 책상과 88mm인 책상은 용도가 달라질 것이다. 싱크대 높이 85mm와 95mm는 주방을 사용하는 사람의 신체 크기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신중하지 않으면 큰일나는 수치들이다. 인테리어 도면의 치수는 우리에게 ‘손가락 하나까지 고려해서 디자인했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마다 사용되는 도면의 양과 품질은 매우 다르다. 법적으로 요구되는 평,입,단면도만 가지고 공사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가구나 세세한 상세도까지 모두 그려서 수많은 도면이 등장하는 현장도 있다. 또 같은 평면도, 단면도지만 어떤 도면은 A3 사이즈 종이에 벽만 간략하게 표현된 것도 있고, 도면 구석구석까지 빼곡하게 내용이 적혀져 있거나 상세도가 여기저기 표시된 경우도 있다. 양이 많은 리포트가 꼭 A+을 받는 것이 아닌 것처럼 도면이 빼곡하게 채워진 도면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이런 것까지 고민하고서 도면을 그렸어요”라는 말은 된다. 그러니까, 건축가에게 도면을 받았다면 도면에 그려진 숫자들과 상세도의 양을 확인해볼 것. 도면의 내용을 모른다 해도 얼마나 작은 부분들까지 고민했는지 금방 알게 될 테니까.

정구원 트임건축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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