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의 난데없는 황교안 띄우기
국정파탄 책임 공유 벌써 잊었나
황대행 저울질 행보도 염치없는 짓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의 실패는 뼈저린 교훈을 여럿 남겼다. 첫손에 꼽을 것은 아무나 대통령에 앉혀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애당초 자격 없는 이가 권좌를 꿰차고 나라를, 국민의 삶을, 미래를 얼마나 망가뜨렸는지, 아직 전모가 다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정치권에선 전혀 다른 교훈을 얻은 듯하다. 그런 사람도 표를 얻어 권력을 잡았는데 누군들 못할쏘냐, 혹은 누가 돼도 그보다야 낫지 않겠느냐는. 물론 대놓고 그리 말할 이는 없겠다. 하지만 똑똑히 봐야 할 건 한껏 포장된 말이 아니라 그 뒤에 감춘 민낯이다. 안타깝게도, 정치권의 움직임을 보면 ‘되는 대로 아무나’의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새누리당이 난데없이 ‘황교안 띄우기’에 나섰다. 당초 공을 들였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칠 자리도 마땅찮은 ‘빅텐트’를 들고 종잡을 수 없는 반반 행보를 이어가자 대안에 눈을 돌린 것이다.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은 10%에 육박한 그의 대선후보 지지율을 들어 “우리 당이 대통령 후보를 내도 된다는 국민의 허락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놀랍도록 창의적인 해석이지만 궤변일 뿐이다.
때마침 반 전 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이른바 보수 진영의 유일한 대마(大馬)가 사라졌으니 대체재의 몸값은 더 뛸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이라던 새누리당 일각의 비난도 슬그머니 꼬리를 감출 공산이 크다. 문재인 대세론이 더 힘을 받는다면 반문 연대를 위해 범 보수 진영이 ‘황교안 대망론’에 합세할지도 모를 일이다.
황 대행의 행보도 심상치 않다. 출마 가능성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지만 주변에선 “관심이 있고 기대를 갖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덩달아 인물분석 기사들이 나오더니 ‘목소리까지 갖춘 귀상(貴相)’이란 관상평까지 운위된다. 어쩌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긴 했으나, 그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책임을 누구보다 무겁게 나눠져야 할 이 정권의 핵심인사임을 잊은 모양새다.
황 대행의 출마에 반대해야 할 이유는 ‘권한대행의 권한대행’ 체제라는 촌극에 대한 우려만이 아니다. 진위가 가려지지 않은 병역 면제 의혹 탓에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정치공학적 계산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은 대한민국 정치를 짓눌러온 오랜 구태와 악습을 청산하고 다시는 과거로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만들어내야 할 때다. 단언컨대 그는 그런 시대적 요구에 답할 수 있는 어떠한 자격도,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 한 친박 핵심 의원은 그를 일러 “안정감이나 정직함, 인물 면에서 여야를 통틀어 가장 나은 후보”라고 평했다고 한다. 누구 말마따나 “소가 웃을 일”이다. 수구 세력이 그를 반기는 주된 근거는 법무부 장관 시절 통합진보당 해산을 ‘성공적으로’ 이끈 전력이다. 그 후 상식에 기반한 정권 비판자들을 싸잡아 ‘종북좌파’로 몰려는 시도가 이어졌던 것을 상기하면, 현재 특검이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는 블랙리스트의 책임에서 황 대행은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총리 이후는 어떤가. 월간조선 1월호에 실린 인물분석 기사에서 전 총리실 직원은 그에 대해 “청와대와 대통령에게 누가 안 되게 항상 그것을 먼저 생각하고 일을 한다. 2인자로서 처신을 잘해 왔다”고 평했다. 기사는 생뚱맞게 이를 ‘정치적 감각’을 보여준 사례로 들었지만, 명색이 정권의 2인자가 무난하게, 모나지 않게, 무엇보다 청와대와 대통령에게 누가 안 되게 처신한 결과가 무엇인가. 구구절절 되짚어 말하기에도 민망하다.
누구든 대권을 꿈꾸는 건 자유다. 단 한 표라도 더 얻는 쪽이 승자가 되는 선거 판에서 뜻밖의 지지율에 우쭐하는 것도 마냥 탓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큰 흐름을 간과하고 앞뒤 뚝 잘라 낸 수치에 현혹돼서는 오판하기 십상이다. 더구나 동네 반장 선거도 아니고 나라를 바로 이끌 최고권력자를 뽑는 마당이다. 대권에 합당한 정치철학과 비전을 보여주긴커녕 어설픈 반성 한마디 없이 기웃기웃 판을 넘보는 것은 정말이지 염치없는 짓이다.
이희정 미디어전략실장 jay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