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1급 간부 ‘찍어내기’에도 관여 정황
‘문화ㆍ예술계 블랙리스트(지원배제 명단)’ 작성 과정에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가 개입, 공모한 것으로 박영수(65) 특별검사팀이 결론 내린 사실이 확인됐다. 특검은 또 리스트 작성ㆍ집행에 반대한 문화체육관광부 간부들 ‘찍어내기’에도 박 대통령이 관여한 것으로 판단했다.
김기춘 “불퇴전의 각오로 좌파세력과 싸워야”
31일 법원과 특검 등에 따르면 2013년 9월 3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에게 “국정 지표가 문화 융성인데 좌편향 문화ㆍ예술계에 문제가 많다”며 “특히, 롯데와 CJ 등 투자자가 협조를 하지 않아 문제”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박 대통령의 이 발언 이후 2014년 5월까지 청와대 측이 조직적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든 것으로 파악됐다. 2014년 1월 4일 김 전 실장은 수석비서관들을 만나 “우파가 좌파 위에 떠 있는 섬의 형국이니 전투모드를 갖추고 불퇴전의 각오로 좌파세력과 싸워야 한다. 지금은 대통령 혼자 뛰고 있는데…”라며 독려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신동철(56)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에게 “정권이 바뀌었는데 좌파들은 잘 먹고 사는 데 비해 우파들은 배고프다, 잘 해보라”고도 했다.
이에 따라 김 전 실장 주도로 3,000여개의 ‘문제 단체’와 8,000여명의 좌편향 인사 목록이 만들어졌다. 박준우(64) 당시 정무수석과 신 전 비서관은 이 명단을 바탕으로 ‘문제 단체 조치 내역 및 관리 방안’이라는 서면을 만들어 김 전 실장과 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조사됐다. ‘평소 진보 성향 인물 및 현 정권 비판 인사를 기피한’ 최씨는 박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블랙리스트 작성 등에 관여한 것으로 특검은 보고 있다. 이후 목록이 수정ㆍ보완되면서 기재 인원은 9,000여명까지 불어났다.
작성된 블랙리스트는 문체부에 전달돼 집행됐다. 특검은 전날 김종덕(60) 전 문체부 장관과 정관주(53) 전 문체부 1차관, 신 전 비서관을 구속기소했다. 이들에게는 정부와 견해가 다른 문화ㆍ예술인 및 단체들에게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도록 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가 적용됐다.
조윤선, ‘다이빙벨’ 상영 방해 정황도 드러나
애초 블랙리스트 존재를 부인했던 조윤선(51ㆍ구속) 전 문체부 장관도 리스트 유지ㆍ관리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정무수석실 직원들을 통해 지원ㆍ배제 명단을 선별해 문체부에 하달하도록 지시하고, 2014년 9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영화 ‘다이빙벨’의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을 방해하기도 했다. 보수 논객에 이 영화 관련 비판적 기고를 부탁하고 여당 의원을 통해 국정감사에서 지적하도록 강조하는 한편, 영화 상영 당시 전 좌석을 매입해 일반인이 관람하지 못하게 하고 상영 후에는 인터넷에 작품을 평가절하하는 관람평을 올리도록 했다.
특검은 또, 블랙리스트 집행 등에 반대한 문체부 1급 공무원이 물러나게 하는 데에도 박 대통령의 사실상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2014년 7월 리스트 집행ㆍ관리에 소극적이던 유진룡(61) 당시 문체부 장관과 이른바 ‘성분 불량자’로 분류된 최규학 기획조정실장 등 1급 공무원 3명의 사표를 받는 과정, ‘나쁜 사람’ 노태강 전 체육국장과 진재수 전 체육정책과장 경질 과정에도 박 대통령이 관여한 것으로 봤다. 특검은 김 전 장관과 김상률(57) 전 교육문화수석 등을 공범으로 규정했다.
한편, 특검은 청와대 측이 삼성ㆍ현대자동차ㆍSKㆍLG 등 대기업 4곳으로부터 70억여원을 받아 대한민국어버이연합ㆍ엄마부대 등 극우 성향 단체들의 ‘관제 데모’를 지원한 정황을 파악,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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