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서명한 초강경 ‘반(反)난민’ 행정명령의 파장이 당장 현실로 나타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테러위험국 국민의 미국 입국 일시 중단 및 비자발급 중단, 난민입국 프로그램 중단, 난민 심사 강화 등이 즉각 시행되면서 미국행 비행기 탑승 거부, 미국 도착 후 공항 억류 등의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행 비행기 탑승 거부되고 美공항서 억류
AP 통신 등에 따르면 28일 이집트 카이로를 떠나 미국 뉴욕으로 향하는 이집트항공 여객기를 타려던 이라크인 5명과 예멘인 1명의 탑승이 거부됐다. 이들은 모두 미국 입국에 유효한 비자를 소지하고 있었으나 탑승을 저지당했다. 이란 테헤란의 여행사 2곳은 또한 아랍에미리트(UAE) 에티하드와 에미레이트, 터키 항공으로부터 ‘이란 국적자는 미국 비자가 있더라도 미국행 여객기에 탈 수 없으며, 미국행 항공권도 팔지 말라’는 지침을 전달받았다.
미국에 도착한 뒤 억류된 사례도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발동된 직후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한 이라크 난민 2명이 공항에 억류됐다고 보도했다. 억류된 이들 중 한 명은 이라크 주둔 미군기지에서 10년간 통역, 엔지니어 등으로 일해 온 하미드 칼리드 다위시, 다른 한 명은 미 텍사스에서 일하는 아내와 아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을 찾은 하이데르 사미어 압둘할레크 알샤위라고 NYT는 전했다. 이번 조치로 뉴욕 케네디 공항에 억류된 입국자만 11명에 달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 미 전역에서 하루에 150~175명의 무슬림 입국자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과 국가이민법센터 등 시민단체들은 이 두 사람과 함께 모든 피해 난민과 이민자들을 대신해 백악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오마르 사드왓 ACLU 회장은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평등’에 대한 전쟁이 끔찍한 인적 피해를 낳고 있다”며 “(테러위험국 무슬림 입국) 금지 조치가 계속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구글, 프린스턴대 등 기업ㆍ대학도 초비상
테러위험 7개 무슬림 국가 출신들을 고용하고 있는 미국 기업이나 무슬림계 교수와 학생들이 있는 대학에도 비상이 걸렸다. 최소 187명의 무슬림계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구글이 대표적이다. WSJ와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인도계 구글 최고경영자(CEO) 순다르 피차이는 전날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이번 행정명령이 동료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라며 “우리는 그동안 이민문제에 대한 우리의 (포용적) 시각을 공개적으로 밝혀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이어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피해 직원들을 돕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 외국에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글로벌 안보팀에 연락하라”고 당부했다.
미국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프린스턴 대학은 학생과 교수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외국 여행을 삼갈 것을 권고했다. 이 또한 무슬림계 학생이나 교수들이 미국을 떠났다가 입국이 금지되는 만일의 사태를 피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행정명령 ‘위헌’ 논란 커져
미국 각계에서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 행정명령이 미 헌법에 위배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위헌 논란과 관련해 미국 카토연구소 산하 ‘세계 자유ㆍ번영센터’ 소속 이민정책 전문가 데이비드 비어는 NYT 기고문에서 “미국 의회는 50년 이상 출신국에 따라 이민자를 차별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행정명령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노벨상 수상자 12명을 포함해 미국 학자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반난민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온라인 청원에 서명함으로써 비판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온라인 청원에 서명한 미국 학자는 2,20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원문은 “이 행정명령은 출신국을 기준으로 많은 이민자와 비이민자를 불평등하게 겨냥한다,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며, 인종ㆍ종교적 ‘프로파일링’은 우리 가치와 원칙과 극명하게 대조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국제기구도 반난민 행정명령 철회를 압박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와 국제이주기구(IOM)는 미국 정부에 난민을 환영해온 미국의 전통을 지켜달라고 촉구했고, 국제구호위원회(IRC)의 데이비드 밀리밴드 위원장은 “세계적으로 난민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밀려드는 지금은 미국이 역사적 역할을 포기할 때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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