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지난 23일로 반환점을 돌았다. 지난해 12월 21일부터 다음달 28일까지 총 70일간의 공식 수사에 돌입한 특검은 남은 기간도 각종 의혹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지금까지 특검은 총 10명을 구속시키는 성과를 냈다. 이밖에도 관련자의 자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주요 수사 대상 중 조사를 거부하거나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사람은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두 명만 남았다.
이중 국정농단을 저지른 핵심인 최씨에 대한 의혹를 규명하는 작업은 특검에서 얼마나 이뤄졌을까?
‘정유라 입학부터 학사관리까지’ 이대 관계자 4명 줄줄이 구속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특검법) 제2조에 적시된 특검 수사 대상 중 최순실씨 관련 의혹은 크게 세 갈래다.
1. 최씨는 청와대를 등에 업고 대기업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재단과 유령회사를 세워 이권을 챙겼다.
2. 최씨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친분을 앞세워 민간인 신분으로 국정에 자유롭게 개입했다.
3. 딸 정유라씨를 이화여대에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입학시키고 학사 혜택을 누리게 했다.
이 중 지금까지 특검 조사로 가장 많이 밝혀진 사안은 딸 정씨의 이대 학사비리 관련 의혹이다. 지금까지 구속된 이화여대 관계자는 류철균 교수(3일), 남궁곤 전 입학처장(10일),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18일), 이인성 교수(18일)로 모두 4명에 달한다.
특검팀은 정씨 특혜 과정이 최경희 전 총장의 승인 아래 김 전 학장이 주도하고 남궁 전 처장과 류 교수 등이 집행한 것으로 봤다. 류 교수는 자신의 강의에서 조교에게 정 씨의 시험 답안을 대신 작성하도록 하고 정 씨에게 학점을 준 혐의를, 이 교수는 지난 2016학년도 1학기에 자신이 담당한 3과목을 수강한 정씨가 출석을 하지 않았는데도 학점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남 전 처장은 2015학년도 체육특기자 선발 과정에서 면접 평가위원 교수들에게 “수험생 중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있으니 뽑으라”고 강조하는 등 정씨에게 특혜를 줘 합격시킨 혐의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김 전 학장은 정씨의 입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정씨가 입학한 이후에도 수업 불참과 과제 부실 제출 등을 반복하는 정씨가 비교적 좋은 학점을 유지하도록 뒤를 봐준 의혹이 있다.
“쓸 줄 모른다”더니 또 발견된 태블릿PC의 소유주는 최순실
이번 게이트의 핵심 의혹으로 꼽히는 민간인 국정개입 의혹과 관련해서는 태블릿PC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애초 박 대통령이 첫 번째 사과 담화에서 최씨의 국정 개입을 인정한 것도 태블릿PC라는 물증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씨는 이 첫 번째 태블릿PC에 대해 자기 것이 아니라고 부인해 왔으며, JTBC가 이를 습득하게 된 경위에도 의혹이 있다며 문제 삼아 왔다.
그러나 최근 특검팀은 최씨의 조카인 장시호씨가 제출한 최씨 소유 태블릿PC를 확보함으로써 한 발짝 나아갔다. 이 태블릿PC는 최씨가 2015년 7월부터 11월까지 사용한 것으로, JTBC가 검찰에 제출한 첫번째 태블릿 PC의 사용시기(2012년 6월 개통~2014년 3월)보다 이후에 사용된 것이다. 이 두번째 태블릿PC에는 삼성그룹의 최씨 일가 지원 관련 이메일과 박 대통령 임기 중반 최씨가 대통령 말씀자료 등을 수정한 내용이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특검에서는 자신의 국정개입 혐의를 전면부인하고 있지만 공판에서는 일부 인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지난 11일 열린 최씨의 국정개입 두번째 공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수정한 사실을 인정한 것. 최씨는 “정호성 비서관이 워낙 충신이라 도움을 요청해왔다”며 “평소 대통령의 철학을 알기 때문에 의견을 제시했다”고 진술했다.
‘정유라 지원 의혹’ 삼성 등 대기업 상납, 대가성 인정될까
국민의 전례 없는 응원 속에 진행되고 있는 특검 수사지만 탄탄대로만 달려온 것은 아니다. 특히 특검팀이 청구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전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파죽지세로 달려온 특검 수사에 급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특검팀은 삼성이 승마협회장사가 돼 최씨와 정씨를 지원하라는 요구를 받아들임으로써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지원을 받았다고 봤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에 대해 433억원대 뇌물, 97억원대 횡령, 국회 청문회 위증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뇌물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소명 부족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관련자 조사를 포함한 현재까지 수사 내용과 진행 경과 등을 이유로 들며 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대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앞으로 특검팀은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업 중 대가 관계 물증이 잡힌 기업부터 수사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롯데그룹, SK그룹, CJ그룹 등이 본격적인 수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崔, 6번이나 버티다 ‘이중구속’까지… 특검에 강경 맞대응
특검이 벌써 10명에 달하는 의혹 핵심 인물을 구속시키며 성과를 내고 있지만 최씨는 여전히 강경하게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그는 특검의 참고인 신분 출석 요구에 첫 소환에만 응한 뒤 이후 ‘정신적 충격’ ‘탄핵심판 출석’ ‘형사재판 준비’ 등 갖가지 사유로 6차례나 출석을 거부했다.
최씨의 특검 출석 거부가 이어지자 특검팀은 지난 23일 이화여대 입학ㆍ학사 특혜 비리로 학교 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로 최씨의 체포영장까지 발부 받아 소환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강제 구인된 최씨도 강경하게 맞대응했다. 그는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기는커녕 “특검이 자백을 강요하고 있다”며 특검에 강하게 항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25일 오전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들어가던 최씨는 취재진을 향해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며 “박근혜 대통령 공동책임을 밝히라고 특검이 자백을 강요하고 있어요. 너무 억울해요. 우리 애들까지, 어린 손자까지 이렇게 하는 것은…”이라고 항의했다. 지난해 귀국하고 검찰에 소환될 당시 “죽을 죄를 지었다”고 울먹이던 모습을 보인 것과 180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이날 오후에는 박 대통령이 탄핵 가결 후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한국경제신문 정규재 주필의 보수성향 인터넷 방송 ‘정규재TV’와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오래 전부터 기획된 것이 아니냐는 점을 지울 수 없다. 우발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태도 변화는 우발적인 것이 아닌 전략적인 것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자백 강요 등 강압수사 프레임으로 특검수사의 신뢰도를 추락시킴으로써 국정농단 재판은 물론 헌법재판소의 박 대통령의 탄핵 심판에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최순실 남은 의혹은 ‘의상구입비, 연설문, 이대 학사비리’
앞으로 특검이 최씨와 관련해 진상을 규명해야 할 사안은 ▦박 대통령 의상구입비 대납 의혹 ▦박 대통령 연설문 수정 의혹 ▦정유라씨 이화여대 학사비리 관련 의혹 등이 꼽히고 있다.
이중 특검팀은 최씨를 상대로 딸 정씨의 이대 학사비리 관련 업무방해 혐의를 우선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최씨의 여러 혐의 중 이대 학사비리 의혹의 수사 진행상황이 빠르기 때문이란 것이 특검팀의 입장이다. 학사비리의 당사자인 정씨의 경우 덴마크 법무부가 구금기한인 이달 30일까지 소환여부를 결정해 한국정부에 통보할 예정이다. 또한 특검팀은 최씨에게 추가로 적용할 혐의로 ‘비선진료’ 의혹과 관련된 의료법 위반 등을 검토하고 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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