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사무총장 간판을 앞세워 유력 대권주자로 떠오른 반기문 전 총장을 누구보다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현직 외교관들입니다.
가장 성공한 선배 외교관의 대권 도전에 대해 반 전 총장의 친정 집인 외교부 식구들은 어떻게 바라볼까요. 국내 정치상황에 대한 말을 아끼는 외교관들의 습성 탓에 단언하기 어렵지만, 기대감보다는 회의적 태도가 더 많은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당장 외교관 출신 대통령이 탄생할 경우 외교부가 수혜자가 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외교부 직원들은 고개를 젓습니다. 한 과장급 외교관은“일본과의 독도 갈등 이슈가 터졌다 치자, 반 전 총장이라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며“오히려 우리 외교에 대한 여론의 비난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외교관 출신 대통령의 외교력에 대한 기대감과 외교적 현실 간 괴리만 커지면서 오히려 외교부의‘공(功)’보다‘과(過)’가 더욱 두드러져 보일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외교부 직원도“작은 외교적 갈등도 실제보다 커 보이는 착시현상이 있을 수 있다”며 "국가 간 잡음을 줄이는 게 외교라면, 외교관 출신 대통령은 반가운 일은 아닌 것 같다”고 씁쓸하게 웃습니다.
귀국 뒤 반 전 총장이 보여준 행보에 대한 우려감도 커지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재외 공관에서 근무하는 한 국장급 외교관은“반 전 총장이 확고한 보수주의자로 스스로를 규정할 필요까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반 전 총장은 지난 25일 관훈클럽 토론회에 참석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묻는 질문에“안보를 튼튼히 해야 하는 면에서는 누가 뭐래도 확고한 보수주의자”라고 주장했습니다. 보수층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발언일 것입니다. 북핵 고도화에 대한 우려 여론이 높아지는 상황에 대한 심각한 상황 인식을 드러낼 필요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안보 측면에서 보수주의자로 정의한 것은 우리 외교력을 스스로 제한해버린 실책에 가깝다는 지적입니다.
일본의 끊임없는 과거사 도발과 북한의 핵위협은 다음 정권에서도 이어질 것입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의 반발은 증대되고,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지역 방어에 대한 한국의 더 큰 책임을 요구해오고 있습니다. 한 전직 외교관은“다층적인 도전을 유연하게 풀어낼 수 있는 창의적 해법이 필요한 시점에서‘보수주의자 커밍아웃’은 황당하다”고 꼬집었습니다.
반 총장을 응원하는 후배들도 분명 많을 것입니다. 반 전 총장은 외교관으로서 더없이 화려한 이력을 가진 선배 외교관이기 때문입니다. 대권 도전으로 자칫 그가 쌓아 올린 그간의 공든탑이 무너지지 않기를 가장 바라는 사람 역시 후배 외교관들이어서 이들의 우려는 더 아프게 다가옵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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