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도, 청년들과 만나서도 ‘외교관 신사복’고수
이은재 “코디 신경 써서 젊은층에 어필했으면”
12일 귀국 이후 종횡무진 대권 행보를 하고 있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때 아닌 패션 지적을 받았습니다. 지난 25일 심재철 국회 부의장이 주최한 조찬 간담회에서입니다. 서울 강남병을 지역구로 둔 이은재 바른정당 의원이 반 전 총장에게 “젊은층과 아줌마들에게 어필할 수 있게 코디나 패션에 신경을 써 달라”고 주문한 것입니다.‘강남 아줌마’에게 패션 지적을 받은 것이지요. 이른바 ‘외교관 신사복’으로 깔끔한 정장 패션을 구사하는 반 전 총장이 어쩌다 패션 지적까지 받게 된 것일까요.
반 전 총장은 귀국 이후 보름 동안 정장 차림만을 고집해왔습니다. 국립현충원 참배나 전직 대통령 예방 등의 일정을 소화할 때 입을 법한 정장을 13일 청년들과의 사당동 김치찌개 회동에서도, 16일 부산 지역 대학생 타운홀 미팅에서도 입었습니다. 기자들과 치맥(치킨에 맥주) 간담회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김치찌개 회동과 치맥 간담회에서 그나마 넥타이를 푼 ‘노타이 차림’으로 등장한 것이 눈에 띌 정도입니다.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상인들과 저녁식사를 할 때도 반 전 총장은 정치인들의 시장 방문 단골 복장인 점퍼 대신 정장 위에 검정색 코트를 걸쳤고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을 방문할 때도 검정 코트 위에 안전모를 쓴 어색한 코디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민심을 읽고 소통하겠다면서 검은 정장을 입고 나타난 반 전 총장이 시민들의 눈에 어색해 보였을 겁니다.
이는 지난해 8월 전국 민심 투어를 하겠다며 밀짚 모자에 체크무늬 남방, 면바지를 입었던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의 옷 차림새와 뚜렷하게 대비됩니다. 의상이 정치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때론 정치인과 시민 간의 심리적 거리를 좁혀주는 역할을 합니다. “반 전 총장이 생각보다 늙어 보인다”는 세간의 지적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반 전 총장이 검은 정장 코트를 벗어 던진 때도 있었습니다. 14일 충북 음성의 AI(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거점 소독소를 방문했을 때 흰색 방역복을 입고 소독에 나섰고 18일 화재가 발생한 전남 여수 수산시장을 방문할 때도 코트 대신 검정색 패딩 점퍼를 입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설 연휴가 지나 소통 행보 2탄에 돌입하게 되면 청년들과 만날 때는 베레모에 청바지를, 시장 상인들을 만날 때는 두툼한 점퍼에 면바지를 입어 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 이웃처럼 친근한 모습에 사소한 말실수나 작은 오해쯤은 대중들이 너그럽게 넘어가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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