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장벽 건설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결국 취소됐다. 여기에 백악관에서는 멕시코 수입품에 20%의 세금을 물려 장벽 건설 비용으로 사용하겠다는 발언까지 나와, 양국간 대립구도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당초 31일로 예정됐던 백악관 방문을 전격 취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멕시코가 국경 장벽 건설 비용을 대지 않겠다면 회담은 취소하는 게 낫겠다”고 발언, 멕시코 측의 반발을 샀다. 페냐 니에토 대통령의 발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의원들과의 합동만찬에서 “회담 취소는 양측 공동의 결정”이었다며 “멕시코가 우리를 공정하게 대하길 원한다. 장벽 비용을 대지 않으면 회담은 의미가 없다”고 입장을 재확인했다.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당초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을 축하하고 서둘러 정상회담 일정을 잡는 등 조용한 ‘저자세 외교’를 구사하려 했지만, 내부에서는 미온적으로 대처한 페냐 니에토 정부에 대한 반발이 극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5일 국경 장벽을 세운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이 멕시코 내 반트럼프 감정에 기름을 부었고, 페냐 니에토 대통령 역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예정대로 진행하는 데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백악관은 한 술 더 떴다. “장벽 비용을 충족하기 위해 멕시코에서 들어오는 상품에 20% 세금을 매길 수 있다”고 밝혔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무역적자를 메우기 위해 다른 나라도 하는 일”이라면서 “전체 수입비용 500억달러에 조세 20%만 매긴다면 연간 100억달러를 모아 국경 장벽 세우는데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파이서 대변인의 ‘20% 세금’ 발언은 워싱턴 내에서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라인스 프리버스 비서실장은 “여러 가지 정책제안 중 하나”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멕시코 측도 즉각 반격했다. 일데폰소 과하르도 멕시코 경제장관은 “멕시코 수입품에 대한 세금은 멕시코가 아니라 북미 소비자에 대한 세금”이라며 “아보카도부터 세탁기와 평면 텔레비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품이 비싸질 것”이라고 말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미국 공화당에서는 백악관측의 ‘20% 세금’발언이 공화당 주류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국경조정세’와 연결돼 있다며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직접적인 수입관세 대신 국경조정세를 통해 수출은 그대로 두고 수입품에 세금을 물리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수입관세를 선호해 왔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스파이서 대변인이 내놓은 20% 세금이 국경조정세인지 관세인지도 불명확하다. 게다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경조정세든 수입관세든, 멕시코라는 특정 국가를 향한 표적세금은 세계무역기구(WTO) 일반협정이 용인하는 수위마저 넘어서는 것이라는 진단이 우세하다. 무디스애널리틱스의 수석경제학자 마크 잰디는 AP통신에 “국경조정도 멕시코를 향한 것이라면 결국 관세가 되며 멕시코가 WTO에 제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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