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빛이 되고 싶습니다. 많은 작곡가들의 소나타 전곡을 녹음해 판을 낼 것입니다.”
30년 후 자신의 모습을 적어보라는 글짓기 과제에 피아노를 좋아하던 초등학생은 20여년 전 이렇게 적었다. 훗날 그는 데뷔앨범으로는 드물게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했고 빌보드와 아이튠즈 클래식 차트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에 오른 피아니스트가 됐다.
스스로 만든 삶의 이정표를 따라가고 있는 피아니스트 임현정(30). 그는 불과 13세 때 음악과 자유를 찾아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는 프랑스로 홀로 유학 길에 올랐을 만큼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한 확신이 뚜렷하다. 음악을 통해 인간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 그는 관객들에게도 이를 전달하기 위한 연주를 한다. 최근 서울 도심에서 그를 만나 2년 만에 국내에서 연주회 ‘침묵의 소리’를 여는 소회와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프로그램은 숙제를 다 끝낸 뒤 ‘꼭 해야지’하고 아껴뒀던 작품들을 연주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표정에서 설렘이 묻어났다. 임현정은 스무 살 무렵 스스로와 ‘10년 동안 피아니스트에게 기본이 되는 레퍼토리(연주곡목)를 모두 공부하자’고 약속했다. “내가 좋아하는 곡, 나와 어울리는 곡을 뽑아 연주하는 건 저에겐 사치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베토벤ㆍ쇼팽 전곡, 바흐 평균율 등 주요 레퍼토리를 공부한 뒤 이제는 “감히 ‘저에게 맞는 곡’을 연주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연주하는 것 자체로도 편하고 재미있다며 꺼내든 작품은 슈만의 ‘사육제’, 브람스의 ‘8개 피아노 소품’, 라벨의 ‘거울’, 프랑크의 ‘프렐류드, 코랄과 푸가’다.
임현정은 음악을 연주하기 전 작곡가의 삶의 한 조각도 놓치지 않으려 공부한다. “음악 작품을 통해 작곡가의 삶과 의도를 청중에게 전달하는 게 연주자의 의무라고 생각”해서다. 그는 자신의 연주를 듣기 위해 2시간을 내준 관객 한 명 한 명에게 큰 선물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0분의 관객이 오면 (다 합쳐서)4,000시간이죠. 제 의무는 그 시간을 가장 아름답게 하는 거예요.” 이번 공연의 제목 ‘침묵의 소리’는 지난해 프랑스 출판사 ‘알방 미셸’에서 펴낸 자신의 에세이집 제목에서 따왔다.
프랑스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을 최연소로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한 그의 목표는 뭘까. 임현정은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유럽 각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주를 통해 자신의 책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강연 제의를 자주 받는다. 이번이 세 번째 고국 무대. 여전히 국내 무대에 오르면 눈물이 난다는 그의 연주를 내달 4일 오후 8시 예술의 전당에서 만날 수 있다. (02)737-0708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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