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세력의 ‘주홍글씨’가 된 ‘진보 싸가지론’은 김영춘 의원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겨냥한 말에서 유래됐다. 2005년 열린우리당 시절 친노그룹과 대립하면서 “저토록 옳은 얘기를 어쩌면 그렇게 싸가지 없이 하느냐”고 비판해 유명해진 표현이다. 후일 김영춘은 “일파만파 파장을 일으켜 송구스럽다”고 사과했고 유시민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바꾸려고 노력했다”고 수긍했다. 싸가지론은 강준만 교수가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책을 내놓으며 지식사회의 담론으로까지 확장됐다.
▦ 한동안 잊혀졌던 진보 싸가지론이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시국비판 풍자전시회를 계기로 되살아나고 있다. 에두아르 마네의 누드화에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그림이 ‘반여성적 인격살인’이라는 논란을 부르면서다. ‘싹수’라는 의미의 강원도와 전라도 방언에서 나온 ‘싸가지 없다’는 말이 “예의가 없고 몰상식하다”는 태도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 영역’이라는 반박은 ‘풍자를 가장한 여성 혐오’라는 논리 앞에 힘을 잃었다. 민주당이 표 의원을 즉각 당 윤리심판원에 회부한 것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진보 싸가지론의 폭발성을 의식한 조치다.
▦ ‘싸가지 결핍증’으로 말하자면 여당이나 보수 쪽이 한술 더 뜨는 게 사실이긴 하다. 대통령을 배경으로 호가호위하며 권력을 휘둘러온 친박의 안하무인격 행태야말로 ‘싸가지 없음’의 표본이다. 세월호 유족에게 ‘시체 장사’ 운운하며 모욕하고 단식 농성장을 찾아가 피자와 치킨을 먹어대던 극우세력은 또 어떤가. 자신들의 잘못을 들추기만 하면 무조건 ‘종북’과 ‘빨갱이’로 모는 버릇도 싸가지가 없는 데서 비롯했다.
▦ 그럼에도 진보에 훨씬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진보세력이 갖는 ‘도덕적 우월감’에 대한 반작용이 아닌가 싶다. 진보만이 옳다는 독선과 우월감에 기인한 배려 부족이 오히려 대중에게 더 엄격한 인식을 심어 줬다. 진보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싸가지 없다는 인식을 씻지 못하면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없다. 표 의원은 자신이 쓴 ‘표창원, 보수의 품격’에서 “보수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엄격하다. 부끄러움을 알고 공익을 위하는 것이 보수”라고 했다. 진보에는 그 이상의 절제와 품격이 요구된다는 것을 표 의원은 잊은 듯싶다.
이충재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