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학생인권조례 5주년
촛불 청소년에 ‘기특’하단 말에도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시선 담겨
‘학생다움’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는 그간 금기에 가까웠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자” 며 촛불을 들고 서울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청소년들의 모습이 유독 큰 울림을 준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이처럼 청소년들의 다양한 외침이 실제 정당한 권리 실현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11년 째 분투하고 있는 단체다. 서울 학생인권의 날이자 학생인권조례 제정 5주년을 하루 앞둔 25일 서울 용산구 아수나로 사무실에서 만난 활동가 치이즈(본명 장은채ㆍ20)씨와 리티(15)씨는 “교복 입은 학생들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지 말아달라”고 당차게 말했다.
2006년 2월 출범한 아수나로는 현재 서울과 광주, 부산 등에 7개 지부를 두고 있다. 아수나로라는 이름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의 소설 ‘엑소더스’에 나오는 청소년단체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불멸, 불사라는 뜻을 담았다.
최근에서야 큰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선거연령 18세 하향’ 의제는 아수나로에겐 이미 익숙하다. 아수나로는 교육감 직선제가 처음 도입된 2007년부터 선거 연령을 16, 17세까지 하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2년에는 청소년에 대해 선거권 및 피선거권, 정당가입과 활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공직선거법 등에 대해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선거연령 하향으로 교육 현장이 정치화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를 전하자 이들에게선 곧장 “모순적인 주장”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치이즈씨는 “18세까지는 정치적으로 깨끗하고 순수하길 바라면서 ‘20대의 낮은 투표율과 정치적 무관심이 사회 문제’라고 일갈하는 일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리티씨도 “학생이기 전에 한 명의 시민이자 교육 현장의 주체로서 교육감과 국회의원, 대통령을 뽑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어른들의 시선도 때로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촛불을 든 청소년들에게 “학생인데 공부를 해야지”라는 훈계만큼이나 “기특하다”라는 말도 상처로 다가온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인권조례 5주년을 맞는 아수나로의 소회는 남다르다. 치이즈씨는 “공부 외에는 사실상 아무 것도 하지 말 것을 강요받으면서 학생들의 인권은 일상 속에서 스러지고 있다“며 “조례 제정이 학생 인권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준 것은 맞지만 청소년이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를 누리려면 극복해야 할 장애물들이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청소년 인권 침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올해는 ‘나이주의’(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라 생기는 위계 관계) 문제를 연구해 개선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학생인권’이라는 단어가 탄생한 것은 결국 어른들의 시선으로 나이에 따라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의 한계를 정해놨기 때문이죠. 청소년이 차별 대상이 되지 않도록 열심히 뛸 거예요.”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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