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유력 대선주자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선거구제 개편 필요성을 역설했다.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의 바꿀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 것이지만, 그간 정치권에서 꾸준히 논의가 돼 왔음에도 이해관계가 얽혀 무산된 사안이라, 실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인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는다.
반 전 총장은 2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포럼에서 “지역유권자 30~40%의 득표로 국회의원이 되고, 과반에도 미치지 못한 지지로 대통령이 되는 나라에서 60~70%의 유권자와 과반 이상의 국민들은 어떤 정장과 국회, 대통령도 신뢰하지 않는다”며 “저는 대다수 국민의 뜻이 정치에 반영되는 선거구제 변경과 분권 및 협치의 헌법 개정을 통해 정치질서와 정치문화를 확실히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소선구제가 갖고 있는 단점을 지적하면서 중대선거구제로의 개선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선거구제 개편은 그간 정치권에서 10년 이상 논의돼 온 이슈다. 선거구마다 최다 득표자 1인만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로 인해 지역주의에 기반한 선거 결과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소선거구제가 정치를 퇴보 시키는 핵심 요인이라는 공감대 속에서 국회는 개원할 때마다 선거구제 개편을 단골 주제로 올렸다. 19대 국회 때인 지난 2015년의 경우 여야가 정치개혁특위를 꾸려 선거구제 개편까지 논의하기로 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정치권 논의가 매번 좌절된 데는 국회의원의 기득권이 핵심 장애물로 지적된다. 여의도 정가 주변에서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라는 자조 섞인 분석이 나왔다. 선거구 권역을 확대해 당선자를 복수로 하는 중대선거구제로 변경할 경우 국회의원들의 지역에 대한 책임이 약화될 수 있다는 현실론도 무시할 수 없다.
반 전 총장은 이날 포럼에서 선거구제 개편과 맞물려 “대통령 선거 때마다 개헌을 약속하고는 정작 집권 후에는 흐지부지 해오던 일을 우리는 수없이 봐왔다”며 대선 전 개헌 필요성도 재차 강조했다. 대통령 임기를 줄여서라도 개헌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정도로 반 전 총장은 권력구조 개편에 방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개헌과 함께 선거구제 개편까지 동시에 해결할 시간과 여력이 되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는 “권력구조 개편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개헌 논의만 해도 그 방향이 제대로 정해져 있지 않은데 선거구제 개편까지 논의하자는 게 우리 정치 현실을 제대로 고려한 것인지 물음표가 붙는다”고 평가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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