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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국가위기관리 시스템의 위기

입력
2017.01.2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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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 들어 위기는 복합성을 제일 특징으로 한다. 냉전 해체는 이념과 관련된 위기만 중요하다는 관성을 해체시켰고, 국가 중심의 위기해결 방식을 사회로 확대시켰다. 안보위기와 경제위기라는 구별이 약해지고 대신 위기들 사이의 상호 침투가 두드러졌다. 그에 따라 전통적 안보문제는 물론 테러 근절, 기후변화 대처, 식량안보 등에 관한 국제협력의 필요성이 증대하였다. 이는 그 동안 국가, 군사안보 위주의 위기관리 시스템의 개혁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한번 굳어진 시스템은 그 목적을 상실하고 정해진 규정이 목적을 지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세월호 사태 때 청와대는 위기관리 시스템에 그런 재난 사고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변명했다. 위기관리시스템에 대한 몰이해와 무책임성의 표본이다.

세계화 시대의 위기관리는 냉전시대를 주도해 온 국가안보와, 대중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인간안보를 차별하지 않고 동시에 추구하는 인식의 전환과 시스템의 통합을 필수조건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북한 발 안보위협으로 국가안보 담론이 인간안보 담론을 압도해왔고, 대중은 여전히 안보정책 결정의 객체로 남아 있다. 그 사이에서 안보담론이 정치적으로 이용돼온 것은 국민들이 잘 알고 있다. 다만 최순실 같이 권력자의 총애를 받은 극소수 민간인만이 탈법적으로 안보정책에 접근했을 따름이다.

우리나라에는 대통령이 의장인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있다. 대통령이 유고되거나 주재하기 어려운 경우 총리가 주재할 수 있다. 국무회의 결정에 앞서 국가안보 관련 사항을 먼저 심의해 대통령에 자문하는 기관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소추안이 통과된 작년 12월 9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주재한 것이 가장 최근의 회의다. 당시 황 권한대행은 북한의 도발을 경고하면서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강조하였다. 황교안 권한대행이 이끄는 ‘임시내각’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황 권한대행은 복합적 위기관리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 위협만 강조하며 경제안보, 건강안보, 공동체안보 등 인간안보를 등한시했다. 그리고 대북 제재 일변도로 한반도를 상시 불안상태로 몰아넣고, 그 결과 영구 분단체제가 굳어지는 형국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황 대행은 대통령 선거 출마 가능성을 살피는 정치적 수완을 부린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임시내각의 위기관리 시스템의 위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 큰 위기는 ‘황교안 임시내각’이 트럼프 행정부 등장에 즈음하여 한국의 국익과 한반도 안보에 어떠한 대안도 내놓지 못한 채 미국에 편승하는 무능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를 조속히 도입하고, 북한에 대한 고강도 제재를 이어가고, 한일 위안부문제도 합의대로 추진하겠다는 과욕을 부리고 있다. 박근혜 정권에 부역한 황 권한대행이 법적 절차에 의해 권한대행 행세를 하고 있지만, 박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 통과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반통일적이고 반평화적인 통일외교안보정책도 문제시 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자중할 일이다.

황교안 내각의 임무는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민주평화정부를 수립하는 데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일뿐이다. 황 권한대행이 군사안보 기관을 빈번히 시찰하는 것은 민생 무능을 은폐하는 처사로 보일 수도 있지만, 위기관리시스템에 대한 협소한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정부는 야당과 국민들의 비판을 사며 평화주의에 반하는 외교안보정책을 중단하고 상황을 관리하는 게 상책이다. 나아가 국가위기관리 시스템을 개혁할 여론을 수렴해 차기 정부가 참고하도록 소통의 장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는 바이다. 차기 대통령에 나설 정치인들도 정권을 초월해 복합 위기관리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를 국민들 앞에 내놓아야 할 것이다. 모든 국민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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