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눈 쌓인 자전거 바퀴가 “설탕을 잔뜩 뿌린 도넛 같다”며 까르륵댔다. 은색 가루 옷을 입은 자동차에겐 ‘하이파이브’도 건넸다. 소프트 아이스크림에 파묻힌 문어다리를 지나 공원 벤치에 다다르니 색다른 버전의 동화가 펼쳐진다. “토끼와 거북이가 눈 밭에서 경주를 벌였대요.”
아파트 화단도 놀이터도 거리의 표지판도 온통 눈 세상이다. 얼마나 긴 여정이었을까, 저 높은 곳 어딘가에서 만들어진 순백의 결정은 캄캄한 밤을 날아 세상 만물 위에 사뿐이 내려앉았다. 뒤이어 따라온 눈송이가 그 위에 차곡차곡 쌓이면서 세상은 더욱 하얗고 둥글둥글해졌다. 마치 솜사탕을 덮어놓은 듯 모난 것 없이 부드러운 아침 풍경에 “아름답다!”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좋은 아이들은 놀이터를 뛰어다니며 행복한 눈사람을 만들었다.
판타지 같은 눈 세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살포시 내리고 쌓인 게 언제였나, 잠깐 비친 햇볕에 속절없이 녹아 내렸고 바람 불면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그 흔적마저도 일상의 일사불란함에 의해 쓱싹쓱싹 지워질 판이다. 이미 길바닥에 떨어진 눈송이는 쌓일 틈도 없이 자동차 바퀴에 깔리고 행인들의 발길에 짓눌렸다. 세상에 내린 지 불과 반나절 만에 경비 아저씨의 빗자루에 쓸려 구석에 처박히거나 그늘진 뒷골목에서 얼음과 흙탕물 사이를 오간다. 새하얀 눈송이가 처치 곤란한 ‘오물’ 취급을 받는 사이 솜사탕 마을은 삭막한 현실로 돌변했다. 그리곤 또다시 고개를 드는 그리움….
지난 한 주 곳곳에 등장한 눈 세상을 부지런히 거닐며 카메라를 들이댔다. 커피잔 위의 토핑(Topping)처럼, 초록 이파리의 액세서리처럼 소담스럽게 내린 하얀 눈, 덕분에 눈이 즐거웠던 눈 세상의 소소한 풍경을 모았다. 겨울이 아직 한창인데다 눈은 또 흔하게 내릴 테니 길 막힌다 투덜대는 것도 식상하다. 차라리 살포시 내려앉은 눈이 덧없이 사라지기 전에 휴대폰으로 ‘찰칵’ 어떨까. 이 겨울의 추억을 차곡차곡 저장해 두면 좋을 것 같다. 금새 그리워질 장면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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