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SㆍMTS 등 사용할 줄 몰라
증권사 직원에 거래 의존 심화
자문ㆍ위탁 과정 분쟁 크게 늘어
주식투자 경력 50년의 80세 김모씨는 ‘투자의 감’만큼은 아직 누구 못지 않다고 여기지만 요즘 갈수록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김씨는 젊은이들이 즐겨 쓰는 홈 트레이딩 시스템(HTSㆍ컴퓨터를 이용한 주식 거래 시스템)이나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을 전혀 쓸 줄 몰라 여전히 증권사 직원에 의지한다. 작년 말 눈 여겨 봤던 A종목 주가가 당일 최저가인 31만2,000원까지 떨어지자 직원에게 매수를 부탁했지만 주문전표가 전달되는 사이 주가는 다시 올랐고 결국 저가 매수에 실패하고 말았다. 김씨는 “직원이 늑장을 부렸다”고 불평했지만 직원은 “어르신들의 모든 주문을 적시에 처리하긴 힘들다”고 역시 난감해 했다.
급속한 고령화와 노후에 대한 불안감으로 고령층의 각종 자산투자 참여가 급증하고 있지만, HTSㆍMTS 등 온라인ㆍ신개념 투자수단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한 투자 인프라는 여전히 ‘친절 대응’ 수준에 머물고 있다. 향후 폭발적으로 늘어날 고령층 투자자를 방치할 경우 자칫 투자 분야의 ‘디지털 디바이드’(디지털 정보의 계층간 불균형) 심화 등 사회적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경고도 높아지고 있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우리사회 고령 투자자들은 갈수록 금융 거래의 취약계층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일명 ‘금알못’(금융을 알지 못하는)으로 불릴 만큼 금융 기초지식부터 부족하다. 최근 금융감독원의 전국민 금융이해력 조사에서 70대(52.1점)와 60대(65.0점)는 대출이자를 계산하고 분산투자의 개념을 아는지 등을 평가하는 금융지식 부문에서 전 연령대 평균(70.1점)에 크게 못 미쳤다.
자연히 이들은 각종 거래에서 금융사 직원에 크게 의존한다.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에 따르면 펀드 정보를 얻을 때 은행 및 증권사 직원을 통한다는 60대 이상 투자자(67.8%)는 20대(35.4%)의 두 배에 달했다. 반면 인터넷을 통한다는 비율은 불과 3.0%에 그쳤다.
이런 자문ㆍ위탁 거래 과정에서 분쟁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증권ㆍ선물업계에서 민원ㆍ분쟁 신청인들의 평균 연령은 58.1세로 전년(49.7세)보다 8세 가량 높아졌다.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 관계자는 “고령자는 투자와 상품 선택에 판매 직원이 큰 영향을 미치므로 직원들의 윤리의식이 특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금융사 입장에서 고령 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손이 많이 가는 유형이지만 한편으로는 놓칠 수 없는 주요 고객이기도 하다. 다른 연령층에 비해 투자규모가 작지 않은데다 ‘믿고 맡기는’ 경향상 회사 입장에선 수익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60대 이상은 전체 주주 가운데 11.8%를 차지하지만, 이들의 보유 주식수 비중은 16.3%로 상대적으로 컸다.
하지만 이런 고령투자자를 위한 국내 투자 인프라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일부 증권사에서 스마트폰 MTS 기능을 보다 간편하게 개선하거나 고객 투자설명회에 ‘HTS 사용법’ 강의를 개설하는 수준으로 대응하고 있다. 대부분 증권사의 이들을 위한 노력은 여전히 영업점 직원에 대한 친절 교육 강조 수준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령자들은 정보기술(IT)은 물론 일반 금융 지식도 교육받을 기회가 부족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며 “금융기관들이 고령자 대상 교육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상반기부터 고령투자자 등 금융 취약계층 대상의 전자금융서비스 교육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권재희 기자 luden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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