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위한 예산 지원 금지 골자
‘멕시코시티 정책’ 부활 행정명령
공화당 주류와 사회적 가치 공유
연방 공무원 고용·임금 동결도
8년 만에 백악관을 탈환한 공화당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사회 보수화를 위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낙태, 연방정부 규모 등 보수와 진보가 첨예하게 대립해 온 주요 정책들에 대해 보수적 가치를 선호한다는 명백한 신호를 보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서명한 낙태를 시행하거나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비정부기구(NGO)에 대해 연방예산 지원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이 대표적이다. 낙태를 반대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1984년 제정했던 ‘멕시코시티 정책’을 부활시키는 조치다. 현행 법으로도 연방 예산을 낙태가 합법인 나라에 지원하지 못하도록 돼 있지만, 이 조치는 가난한 나라에서 낙태 관련 상담을 하거나 낙태 반대를 지지하는 비정부 기구의 모금조차 금지하고 있다. 레이건 행정부 이래 낙태를 찬성하는 민주당 대통령이 집권하면 ‘멕시코시티 정책’을 폐기했고, 낙태에 반대하는 공화당 대통령이 등장하면 이 정책을 부활시켰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이 정책을 폐기시켰으나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부활시켰고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다시 폐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反) 자유무역주의를 내세우는 등 경제ㆍ통상 정책에서 공화당 주류와 결을 달리하고 있지만 사회 정책에 있어서는 보수적 가치를 신봉한다는 사실을 뚜렷이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생명을 존중하는 대통령임을 보여준다”고 옹호했다. 반면 스테니 호이어 민주당 하원 원내 대표는 “지난 주말 전세계에서 수백만명의 여성들이 ‘여성들의 행진’을 했지만 트럼프는 여성들 건강을 위협하는 일을 하며 첫 주를 보냈다”고 비판했다.
후보 시절 “연방 공무원이 자연감소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군을 제외한 연방 공무원들의 고용과 임금을 동결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이 역시 ‘거대 연방정부’에 반대하는 공화당 전통노선에 입각한 조치다. 부시 대통령이 2001년 취임 후 취한 조치와 같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 당시 공화당의 연방 공무원 동결 요구에도 불구하고 2010년 임금 동결에만 동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에 따른 규제 부담을 완화하는 행정명령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규제 동결을 지시하는 행정명령도 발동하는 등 전통적으로 친 기업의 공화당 노선에 따르는 조치들을 단행한 바 있다.
트럼프 내각 각료 인준이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내정자는 이날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인준을 받았다. 틸러슨에 반대했던 마르코 루비오(공화) 상원의원이 찬성으로 돌아서면서 공화당 의원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앞으로 상원 전체회의 표결을 통과하면 틸러슨은 국무장관에 공식 취임한다. 마이크 폼페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상원 표결에서 찬성 66표, 반대 32표로 인준돼 정식 취임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지난 20일 상원 인준을 통과하고 취임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존 켈리 국토안보장관에 이어 세 번째 장관급 각료 취임이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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