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교 시절부터 쓴 작사 노트
가수 윤하ㆍ조현아와 음악 교류
박진영과 와인 마시며 고민 나눠
홀로 호주 여행한 후 본격 준비
2. 청춘의 혼란 고스란히 담아
미쓰에이 때의 콘셉트 지우고
담담한 발라드의 감성으로
슬프고 아름다운 모습 보여줘
무대에 엎드려 춤(‘배드 걸 굿 걸’)을 추던 그룹 미쓰에이 멤버 수지(23)는 2~3년 전부터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수지의 음악적 지기는 직접 곡을 쓰는 가수 윤하와 그룹 어반자카파 멤버인 조현아였다. 이들과 음악적 교류를 이어온 뒤 수지가 고등학생 때부터 그 때 그 때 느끼는 감정을 습관처럼 기록해 온 작사 노트에는 ‘살’이 붙기 시작했다. 수지는 자신이 쓴 이야기에 멜로디를 입혔고, 조현아의 도움을 받아 ‘난로마냥’이란 곡의 데모 버전까지 만들었다. 수지가 홀로 만든 노래는 느리면서 어두운 발라드 장르가 많았다.
수지는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JYP)의 대표 프로듀서인 박진영과 와인 잔을 기울이며 새 앨범의 주제 및 방향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지난해 4월 KBS2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 촬영을 끝내고 호주로 홀로 여행을 다녀온 뒤 본격적으로 솔로 앨범 준비에 들어간 뒤다. 박진영은 이 때 수지가 한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댄스 곡 ‘예스 노 메이비’를 만들었고, 이 노래를 들은 수지는 솔로 앨범의 타이틀 곡으로 정했다. 정욱 JYP 대표가 들려준 수지의 솔로 앨범 제작 과정이다.
수지는 최근 SBS 새 수목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 대본 읽기 모임에 참여했다. 내달부터 본격적인 드라마 촬영을 앞두고 짬을 내 솔로 앨범을 낸 데에는 수지가 자신 만의 음악을 발표하고 싶다는 바람이 크게 작용했다. 광주에서 평일에는 학교를 다니고 주말에는 서울로 올라와 JYP에서 노래와 춤을 배우며 가수의 꿈을 키운 악바리다운 욕심이다.
“날 바라보는 시선 두려워” 수지의 성장통
수지가 24일 6곡이 실린 미니 앨범 ‘예스?노?’를 공개하고 가수 홀로 서기에 나선다. 2010년 미쓰에이로 연예계에 데뷔한 뒤 6년 만에 처음으로 내는 솔로 앨범이다. 타이틀 곡 ‘예스 노 메이비’는 쓸쓸한 브릿 팝 분위기의 댄스 곡이다. 20대 여성이 사랑의 아픔에 눈을 뜬 뒤 혼란스러워하는 내용이 담겼다. 수지는 “나를 담는다는 느낌으로 춤을 짰다”고 했다. 격렬한 춤 대신 곡 분위기에 맞춰 감정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안무했다는 뜻이다.
‘그래 아니 어쩌면’이란 뜻의 타이틀 제목처럼 수지는 첫 솔로 앨범에 자신이 겪고 있는 청춘의 혼란을 고스란히 담았다. 17세의 나이에 데뷔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 온 그는 ‘행복한 척’에서 스스로에 행복한 지를 묻는다. “날 바라보고 있는 시선들이 두려워”라며 “난 또 행복한 척, 더 더 행복한 척, 하는 내가 싫어”라고 애처롭게 되뇐다. 스물 셋이 된 수지의 자연스런 성장통이다.
그래서일까. 화려한 아이돌의 앨범에 쓸쓸함이 짙다. “속삭이듯 노래하는 게 장점”(박근태 작곡가)이라는 수지의 목소리 톤에 맞춘 담담한 발라드 곡들은 누군가의 고독을 보듬는다. 가수 윤상이 작곡한 ‘취향’과 에피톤프로젝트가 만든 ‘꽃마리’ 등이다. 수지는 솔로 앨범에서 미쓰에이로 활동했을 때의 과도한 콘셉트를 지우고, 자연스럽고 쓸쓸한 걸 즐기는 자신의 감성을 담는 데 힘을 썼다. 수지의 지인들에 따르면 수지는 창문을 열면 들리는 바람 및 멀리서 차가 지나가는 소리 등 일상의 소리가 담긴 음원(ASMR) 듣기를 즐긴다. 수지가 요즘 즐겨 듣는 노래는 팝 스타 에이브릴 라빈의 히트곡 ‘컴플리케이티드’다. 삶에서 방황하는 이들에 ‘인생은 원래 그런 거야’라고 무심하게 위로를 건네는 곡이다. 수지는 ‘예스? 노?’에 실린 ‘취향’의 가사를 썼고, ‘난로마냥’은 작사, 작곡에 모두 참여했다.
성숙함 내세운 ‘예스 노 메이비’… ‘제2의 이효리’ 되기 위해선
솔로로 나선 수지의 출발은 좋다. 새 앨범 발매에 앞서 지난 17일 먼저 공개한 ‘행복한 척’은 tvN 드라마 ‘도깨비’ 열풍을 등에 업은 OST의 철옹성을 뚫고 멜론 등 주요 음원 사이트에서 당일 일간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분위기가 어두운 데다 강렬한 후렴 없이 수지가 힘을 빼고 독백하듯 불러 자장가처럼 들리기도 하는 곡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성과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제2의 이효리로 성장할 수 있는 이가 수지”라고 봤다. 이효리가 ‘쟁반노래방’과 ‘패밀리가 떴다’ 등의 예능프로그램에서 털털한 모습으로 가수로서의 보편성을 넓혔다면, 수지는 영화 ‘건축학 개론’(2012)으로 ‘국민 첫사랑’으로 불리며 다양한 세대의 폭 넓은 사랑을 받은 청춘 스타로 떠올랐다. 이효리처럼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음악에서 대중적인 폭발력을 이끌어 내는데 다른 20대 여가수보다 유리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풋풋하고 발랄한 역을 주로 맡아 무대 위에서 반전 효과를 크게 줄 수 있다는 점도 이효리와 닮은, 수지의 장점이다.
JYP는 소녀에서 숙녀가 된 수지의 성숙함을 ‘예스 노 메이비’에서 부각해 타이틀곡의 폭발력을 높이겠다는 각오다. JYP는 “기존 수지에게선 볼 수 없었던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수지는 솔로 앨범 발매를 계기로 25일 오후 8시 서울 종로구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 단독 공연을 연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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