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대아파트 경비원 재계약
기간 3개월→1년 늘리는 대신
해고 명분 쌓기용 조항 신설
산 넘어 산이다. 3개월짜리 근로계약을 거부한 경비노동자들에게 문자로 해고를 통지한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경비용역업체(본보 18일자 12면)가 이번엔 황당한 근로조건을 내걸었다. 계약 기간을 1년으로 늘리는 대신 주민 등에게 2회 이상 지적을 받으면 해고될 수 있다는 것이다.
23일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 노동조합 등에 따르면, 용역업체 ㈜에버가드는 최근 새로운 1년짜리 근로계약서를 제시하면서 근로계약 해지(해고) 조항에 ‘근무 장소에서 관리사무소, 입주자대표회의, 입주민으로부터 2회 이상 지적이나 경고를 받는 경우’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업체는 “작년 근로계약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고 밝혔지만, 본보 확인 결과 이번에 신설된 조항이다.
경비노동자들은 발끈했다. 허청환(60)씨는 “주민이 ‘눈이 아직 덜 쓸렸네요’라고 말하는 것도 지적이라면 지적”이라며 “이런 대화 2번이면 해고 당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송용근(62)씨는 “당초 3개월이었는데 1년으로 늘려 재계약해줄 테니 너희들(경비노동자)에게 불리한 것도 하나 넣자는 심산 아니겠냐”고 성토했다. 재계약에 일자리가 달려있는 경비노동자들의 처지를 악용해 사측이 소위 ‘갑(甲)질’을 한다는 주장들이다.
전문가들은 법으로도 명백히 잘못된 근로조건이라고 지적한다. 김유경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대표노무사는 “근로기준법 4조에 보면 근로조건을 결정할 때 사용자와 노동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롭게 정하도록 하고 있다”며 “추가된 해고 조항이 노동자에게 불리한데도 일방적으로 노동자에게 계약을 요구하면 무효”라고 설명했다. 사측이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텐데도, 노동자에게 불리한 근로조건을 끼워 넣는 건 ‘겁주기’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업체 측은 “언론 대응은 일체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최근 재계약 철이 다가오면서 불공정 조항을 이용해 해고 명분을 쌓아 경비노동자를 압박하는 사례는 더 있다. 서울 중랑구 D아파트는 재계약을 앞두고 경비노동자들에게 시말서를 쓰게 해 ‘해고 당할래, 다른 아파트로 갈래’라고 요구했다. 시말서를 두 번 쓰면 해고된다는 조항을 악용해 평소 마음에 들지 않는 경비노동자를 다른 아파트로 보내버리는 식이다. 안성식 서울 노원노동복지센터장은 “대부분 고령인 경비노동자들에게 이동거리가 먼 아파트로 옮기라는 건 사실상 해고나 마찬가지”라며 “사측이 재계약을 목줄로 쥐고 경비노동자들을 좌지우지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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