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지난해 10월 단종한 스마트폰 ‘갤럭시노트7’의 발화(發火) 원인을 기기 결함이 아닌 배터리 자체 결함으로 최종 결론지었다. 지난해 8월 갤럭시노트7 발화 사례가 처음 보고된 이후 약 5개월 만이다.
삼성전자는 발화 원인 조사 과정에서 마련한 8단계의 배터리 안전성 검사 등 종합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이르면 3월 공개될 ‘갤럭시S8’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제품 기획 단계부터 소비자 안전을 최우선에 둠으로써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각오다.
배터리 제조상 결함이 발화 원인
삼성전자는 23일 서울 삼성 서초사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갤럭시노트7 발화 사고가 배터리 자체 결함에 의한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은 “지난 수개월 간 철저한 원인 규명을 위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 제품뿐만 아니라 각각의 검증 단계와 제조, 물류, 보관 등 전 공정에서 원점부터 총체적이고 깊이 있는 조사를 했다”며 “700여명의 전문 인력이 갤럭시노트7 완제품 20만대, 배터리 3만대로 대규모 충ㆍ방전 시험을 해 소손(燒巽·불에 타서 부서짐) 현상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이를 통해 갤럭시노트7에 사용된 배터리의 제조상 결함을 발화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최종 결론 내렸다. 스마트폰에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크게 양극과 음극, 이 둘을 물리적으로 분리해주는 얇은 막으로 구성되는데 일부 배터리에서 분리막 손상으로 양극과 음극이 만나게 되면서 발화했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분리막 손상을 유발한 구체적 원인은 삼성SDI와 중국 ATL의 배터리가 각기 달랐다. 삼성SDI 배터리는 정상적인 경우 일직선으로 뻗어 있어야 할 배터리 오른쪽 상단 모서리가 눌린 것이 발화의 주된 요인이었다. ATL 배터리의 경우 양극 쪽에 생긴 비정상적 돌기가 분리막과 절연테이프를 파손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고 사장은 “제품 설계상 문제, 방수ㆍ방진 기능 도입으로 인한 이상 과열, 과열을 막는 소프트웨어의 오류 등은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며 “삼성전자가 원인 조사를 의뢰한 UL, 엑스포넌트 등 외부업체들도 모두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다만 일각에선 두 업체가 제조한 모든 배터리에서 분리막 손상이 발생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들어 이번 발표가 의문을 완전히 해소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고 사장은 “배터리를 제조한 삼성SDI와 중국 ATL에는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적인 스마트폰을 제작하기 위해 제조사에 “배터리 크기는 줄이고, 용량은 늘려달라”는 무리한 목표를 제시하고, 배터리 설계와 제조 공정상의 문제를 제품 출시 전에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책임이 삼성전자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의 근본 원인은 결국 삼성전자에 있다는 뼈아픈 반성인 셈이다.
8단계 안전성 검사 등 재발 방지에 총력
이날 발표의 방점은 오히려 ‘재발 방지’에 찍혔다. 고 사장은 “개발, 제조, 검증 등 모든 과정에 대한 종합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했다”고 힘줘 말했다.
삼성전자는 우선 현재 5단계인 배터리 안전성 검사를 8단계로 늘려 강화하기로 했다. 주요 내용은 ▦배터리의 안전성과 내구성을 검사하는 주기와 횟수 대폭 확대 ▦배터리 외관의 이상 유무를 표준 견본과 비교 평가 ▦소비자가 실제 사용하는 조건에 맞춰 충전ㆍ방전 반복 시험 등이다.
아울러 설계와 소프트웨어도 개선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갤럭시노트7 발화 원인 조사에서 기기 자체 설계나 소프트웨어의 결함은 드러나지 않았으나, 사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취지다. 소비자가 실제 이용할 때 만날 수 있는 극단의 환경을 설계 단계부터 고려하고, 배터리를 넣는 공간을 별도로 확보해 소비자가 사용 중 제품을 떨어뜨리더라도 물리적 충격을 최소화하는 장치를 추가로 넣기로 했다. 또 배터리에 과부하가 걸리면 이를 감지해 전류 공급을 차단하는 소프트웨어도 새로 개발할 계획이다.
‘안전 최우선’ 갤럭시S8 공개 시점도 미뤄
이제 모든 관심은 상반기 출시될 갤럭시S8에 모아지고 있다. 고 사장은 이날 갤럭시S8의 정확한 출시일정에 대해선 함구했다. 다만 “(내달 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는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매번 MWC에서 갤럭시S 신제품을 첫 공개하던 관례를 깨고 이르면 3월 다른 곳에서 발표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갤럭시S8은 홈버튼이 사라지고 디스플레이를 둘러싼 테두리(베젤)가 거의 없는 획기적 인 디자인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방수ㆍ방진과 홍채인식 기능도 적용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인수한 ‘비브’의 인공지능(AI) 플랫폼도 탑재될 예정이다. 고 사장은 “그 동안 마련한 제품 안전성 강화 방안을 갤럭시S8에 총동원할 것”이라며 “잃어버린 소비자 신뢰를 반드시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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