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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아무 말이나 막

입력
2017.01.2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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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때의 일이다. 반 친구는 어머니가 쓰러지면서 학교에 며칠 나오지 못했다. 담임은 친구의 장학금 신청서류를 쓰면서 나에게 병문안을 다녀오라 시켰다. 내과 병동을 찾아갔지만 친구 어머니는 없었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산부인과 병동으로 옮겼단다. 핼쑥해진 친구 어머니에게 꽃다발을 내밀고 인사를 드렸다. 병실을 나오다 말고 나는 다시 간호사를 찾아갔다. “간암? 아닌데... 자궁외임신으로 입원하신 건데?” 나는 또박또박 담임에게 그 사실을 전했다. 아주 천천히 일그러지던 담임의 얼굴이 여태 생생하다. 나는 친구의 어머니가 오래 전 사별한 분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장학금은 취소되었고 친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으로 떠났다. 이미 30여 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 일이 떠오르면 아직도 이불 속에서 끙끙거린다. 똘똘한 척 하고 싶었던 내가 공연히 벌인 사달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을 두고 “국내 총생산의 20% 가량을 담당하는 기업총수를 지나가는 개처럼 불러서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한 사람이 있다.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두고는 “블랙리스트가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종북좌파까지 국비 지원을 해야겠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버이연합 어느 할아버지의 말이 아니다. 새누리당 현직 국회의원의 말이다.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며, 모든 국민은 표현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을 모를 리가 없는 사람이다. 그와 가까운 사이라면 슬그머니 조언을 건네고 싶다. 아무 말이나 막 하지 마세요. 어쩌면 30년이 넘어도 그 부끄러움이 가시지 않아 밤마다 이불킥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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