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가 정립되려면 역사관을 바로잡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흩어진 사료를 발굴해서 알리는 것이 제 일입니다.”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70) 소장은 일제강점기 사료가 있는 곳이라면 일본현지 답사를 불사하는 열정적인 사학자다. 부산외대에서 교수로 30년간 일본사를 가르친 그는 2010년 퇴임 직후 부산 수영구에 한일문화연구소를 만들어 지금껏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군 보병 11연대 3중대와 7중대가 작성한 ‘진중일지(陳中日誌)’ 일부를 입수해 일반에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지금껏 ‘위안소’를 민간인이 운영해 일본 정부의 책임은 없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이 담긴 문서다.
김 소장은 “일지에는 병참에서 지정한 위안소 외 사창가 출입을 금지하고, 위안소에는 출입증을 가진 군인만으로 제한한다고 기록돼 있다”며 “‘위안부’에 개입한 문서가 전무하다는 일본의 주장과 달리 관리와 운영을 일본군이 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지난해 광복절에는 독도가 경술국치(1910년) 이후 편입됐다는 내용의 시마네현(島根縣) 문서(326호)를 공개했다. 시마네현이 소속 오키섬(隱岐島) 촌장에게 독도 편입시기와 경위를 묻자 “소화(昭和)14년(1939년) 4월 24일 편입했다”는 답변을 담고 있다. 그 의미에 대해 김 소장은 “일본은 경술국치 이전인 1905년 시마네현 고시로 독도를 편입했기 때문에 패전 후 한국에 반환한 영토에서 독도는 제외된다는 논리를 폈다”며 “황당한 주장일 뿐이지만 그마저도 자신들의 문서를 통해 반박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김 소장의 활동반경은 상당하다. 강제징용 희생자들을 순직자(순난자)로 표기한 후쿠오카(福岡) 탄광집중촌 다가와(田川)시의 비석을 두고 “일본을 위해 의롭게 희생된 게 아니라 강제로 희생당한 것”이라며 수정을 요구했고, 강제징용의 증거라며 후쿠오카 야마노(山野) 탄광의 물자명세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자신이 사료 수집에 몰두하는 이유에 대해 김 소장은 “일본을 제대로 알고 대처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반일감정에 덮어놓고 일본 연구를 멀리하면 외교 무대에서 늘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의 보수정당은 국가주의에 대한 향수가 강하다”며 “독도와 ‘위안부’ 등 복잡한 한일문제의 잘못을 외부(한국)로 돌리는 편이 국가주의를 되살리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김 소장의 바람은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우리 정부의 냉정한 대응이다. “일본에서 강연하면 그들이 좋든 싫든 꼭 하는 말이 있다”고 운을 뗀 그는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새로운 도전, 한일관계를 내다볼 수 있게 된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녀상 설치에 과민한 일본에 우리 정부가 일일이 반응할 필요는 없다”며 “일시적인 조치에 불과하니 속내를 들여다보고 기다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고 말했다. 부산=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