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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데이트 폭력 비극 못 막고도 법 타령하는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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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데이트 폭력 비극 못 막고도 법 타령하는 경찰

입력
2017.01.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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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이상무 기자

‘데이트 폭력’으로 또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9일 서울 강남 한복판(논현동)에서 이모(35)씨가 남자친구 강모(33)씨로부터 30분 넘는 시간 폭행을 당했다. 두개골이 깨지고 많은 피를 흘렸다. 무자비하게 때린 강씨는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갔다. 이를 목격한 주민 신고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출혈로 나흘 만에 숨을 거뒀다.

그의 죽음이 안타까운 이유는 사전에 막을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는 점이다. 폭행이 있기 3시간 전, 이씨는 강씨가 자신의 집에 무단 침입했다며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은 강씨가 이씨 집에 1년여 전부터 전입신고 돼 있고, 이씨가 강씨 퇴거만 원해 ‘주거침입죄’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경찰은 신원 조회 결과 벌금을 내지 않은 것으로 나온 강씨를 인근 파출소로 데려가 벌금 70만원을 받은 뒤 풀어줬다. 경찰이 파출소를 떠나는 강씨에게 “이씨를 찾아가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강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씨를 다시 찾아갔다. 사망에 이르게 된 과정은 그랬다.

이 같은 사정이 알려지자 경찰을 향한 비판이 들끓는다. “경찰이 조금 더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씨를 보호할 순 있었던 것 아니냐”거나 “왜 파출소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용해 다시 이씨 집 근처에 가보지 않았느냐”는 등의 지적이 쏟아졌다. 경찰의 안이한 대응을 질타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법 타령’이다. 담당 경찰서는 자체 청문회를 진행해 해당 파출소가 상황에 맞는 법 집행을 했다고 항변하고, 지휘청인 경찰청은 사건을 보도한 기자에게 연락해 “경찰은 법 테두리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따지기도 했다. ‘데이트폭력방지법’이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인 상황에서 사생활의 영역인 연인 간의 다툼에 경찰이 개입, 강씨를 강제로 붙잡아 둘 명분이 없었다는 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내놓은 말 어디에서도 ‘경찰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더 찾아보지 못해 후회된다’는 얘기는 없었다. 이씨에 대한 안타까움도 찾을 수 없었다. 알량한 법에 기댄 적당주의가 고귀한 생명을 지키지 못한 데 한 몫 하지 않았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해보기 바란다.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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