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귀국, 돌연 대선경쟁
공항 도착부터 실수로 자중지란
위안부 문제 묻는 기자에 화 버럭
캠프 불화설마저 트럼프와 같아
거듭된 악재 속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지지율에 제동이 걸렸다. 평생을 외교관으로 지내다 기성 정치판에 뛰어든 ‘정치 초년생’에게 10년 만에 돌아온 고국은 실수만 반복하게 만드는 이국 땅이나 마찬가지다. 캠프의 자중지란 속에 반 전 총장은 급기야 언론을 향해 그 동안 참았던 분풀이를 해댔다. 기성 정치권 밖에 머물다 정치를 개혁하겠다는 반 전 총장의 처지가 대표적 ‘아웃사이더’ 정치인으로 꼽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18일 대구 시내 한 식당에서 청년들을 만나던 반 전 총장은 기자들의 질문거리가 한일 위안부 합의에 집중되자 동행한 이도운 대변인에게 “나쁜 놈들”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내고 말았다. 평소와 다른 반 전 총장의 태도에 캠프 관계자들까지 놀랐다고 한다. 반 전 총장은 ‘기름장어’라는 별명답게 어떤 난처한 상황도 부드럽게 넘기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정치권에서는 이 장면을 두고 대선 기간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을 공격했던 트럼프 당선인의 거친 스타일과 비교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자신의 세금 회피와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워싱턴포스트를 “위선적이고 부정직한 매체”로 규정하고 취재를 금지하는가 하면 “언론은 인간 쓰레기”라며 법을 개정해 자신을 비판한 언론을 고소하겠다고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물론 반 전 총장 캠프에서는 “반 전 총장의 스타일을 트럼프 당선인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반 전 총장의 잇단 실수가 입길에 오르면서 일반인의 상식이나 정서와 동떨어진 트럼프 당선인의 언행과도 비교되고 있다. 입국 첫날 공항철도 승차권 발매기에 만원권 지폐 두 장을 한꺼번에 넣는 장면부터 시작해 18일 국기에 대한 경례 실수까지 이어지면서 반 전 총장에게는 ‘1일 1실수’라는 딱지가 붙었다. 이를 두고 대선 기간 좌충우돌하며 기행(奇行)을 벌였던 트럼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반 전 총장 캠프 내부의 불화설마저 트럼프 캠프를 닮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외교관 그룹과 친이(명박)계 정치인, 전직 언론인으로 구성된 반 전 총장 캠프는 최근 주도권 경쟁으로 혼선을 빚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베테랑 선거 전략가 폴 매너포트 등 공화당 주류 인사와 장녀 이방카 등 가족으로 구성돼 있던 트럼프 캠프도 계파 갈등으로 대선 기간 몇 번 고비를 겪었다.
최근 반 전 총장 행보와 캠프에서 감지되고 있는 이상조짐은 트럼프 당선인처럼 기성 정치권에 도전하는 ‘아웃사이더’의 숙명이라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이 기성 정치권에 대한 환멸과 혐오를 활용해 대권을 거머쥐었던 것처럼 반 전 총장의 처지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보기도 한다. 반기문 캠프 인사는 “정권이 교체된다고 친문(재인)과 친박(근혜)으로 대표되는 패권 정치가 변하겠느냐”며 정치교체에 대한 의지를 거듭 밝혔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이 트럼프 당선인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서는 첩첩산중을 넘어야 한다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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