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에 서민 지갑이 꽁꽁 얼어붙자 상대적으로 소비 여력이 넉넉한 '큰 손', 우수고객(VIP)들에 대한 유통업계의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매출 상위 1%의 백화점 VIP가 전체 매출의 약 4분의 1, 20%가 전체 매출의 무려 80%를 책임지기 때문에 이들을 잡기 위한 백화점의 마케팅 경쟁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1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백화점 고객 가운데 지난해 매출 순위 상위 1%에 속하는 소비자의 구매액이 전체 백화점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2.8%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인 2015년의 21.9%보다 0.9%포인트(P) 정도 높아진 것이다. 또 상위 20%의 매출 비중도 1년 사이 75%에서 76.1%로 1.1%P 뛰었다.
현대백화점 상위 1% 고객의 매출 비중도 롯데(22.8%)와 비슷한 23.1% 수준이다. 2015년(22.8%)보다 0.3%P 더 늘었다. 상위 20%의 매출 비중도 78.7%에서 79.9%로 1.2%P 커졌다. 롯데백화점이나 현대백화점의 연 매출이 100만 원이고 연 고객 수가 100명이라면, 매출 중 80만 원은 20명의 지갑에서 나온 셈이다. 신세계의 경우 지난해 상위 3%의 VIP 고객이 백화점에서 지출한 돈이 전체 매출의 약 40%를 차지했다.
이들의 백화점 방문 일수도 일반 고객의 약 7배에 이르렀다. 그만큼 '구매력'이 월등하다는 뜻이다.
백화점들은 더 많은 '큰 손'을 확보하기 위해 VIP 관리 제도를 계속 손질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올해부터 매출 상위 약 0.6%에 해당하는 최우수고객(MVG·Most Valuable Guest)의 등급을 기존 3개(프레스티지·크라운·에이스)에서 4개(레니스·프레스티지·크라운·에이스)로 늘렸다. 프레스티지·크라운·에이스 등급의 연간 구매 금액 기준은 각각 6천만 원 이상·3천500만 원 이상·2천만 원 이상인데, 한해 최소 1억 원 이상 구매한 고객에게 레니스 등급을 새로 부여함으로써 MVG 회원 안에서도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에비뉴엘(명품관) VIP 회원제의 경우 기존 등급을 그대로 유지한다. 에비뉴엘 소공동 본점 기준으로 1년 명품 구매액이 1억 원 이상이면 LVVIP, 6천만 원 이상이면 VVIP, 3천만 원 이상이면 VIP로 분류된다.
현대백화점은 자체 백화점 포인트 5천 점 이상을 보유한 고객을 VIP로 관리하는데, VIP 등급은 포인트 수 등에 따라 다시 쟈스민 블랙·쟈스민 블루·클럽쟈스민·플래티늄 등으로 나뉜다. 보통 쟈스민 블랙·블루, 클럽 쟈스민 고객들이 매출 순위로 상위 1% 정도를 차지한다. 현대백화점 포인트는 현대백화점카드로 1천 원 구매할 때마다 기본적으로 1점씩 적립된다.
신세계백화점도 올해 들어 VIP 등급을 트리니티(상위 999명)·퍼스트프라임(연 구매액 6천만 원 이상)·퍼스트(4천만 원 이상)·아너스(2천만 원 이상)·로얄(800만 원 이상) 등 기존 5개에 레드(4백만 원 이상)를 추가해 6등급으로 개편했다. 어느 정도 구매력을 갖춘 '젊은' 고객을 끌어들이자는 취지다.
오세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매출이 정체된 상태에서 백화점이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고 있는데, VIP 고객 유치도 그 돌파구 중 하나"라며 "돈을 가진 고소득층, 재력가들에게 적절한 대우를 해주면서 명품 등을 되도록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사도록 유도하는 게 VIP 마케팅의 가장 큰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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