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왕’. 반기문(74) 전 사무총장에게 붙은 새 별명이다. 유엔사무총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반 전 총장에 붙은 별명인 ‘우려 사무총장(concern manㆍ이슈에 개입하기 보단 성명 등 간접적 방식으로 우려만 표명한다는 점을 비꼰 것)’이 귀국 후 네티즌들에 의해 바뀐 것이다. 귀국 첫날 공항철도를 이용하다 시민들을 불편에 빠뜨린 것부터, 실시간 검색어까지 오른 ‘반기문 턱받이’ ‘반기문 퇴주잔’ 논란까지 국민들의 상식과 맞지 않는 어설픈 실수를 반복해 이젠 오히려 국민들이 반 전 총장을 걱정할 정도라는 뜻에서 얻은 ‘오명’이다.

실시간 검색어 단골손님 된 민생행보 실수

17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반기문 퇴주잔 논란’이라는 동영상이 전파됐다. 영상에는 반 전 총장이 지난 14일 고향인 충북 음성 행치마을의 선친 묘소에 참배하면서 퇴주잔으로 보이는 잔에 술을 받아 자신이 받아 마시는 장면이 담겼다. 반 전 총장이 직접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당시 반 전 총장은 고사례(告辭禮)라는 제례방식에 따라 참배를 하고 음복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영상이 뉴스보도용으로 편집되면서 어설픈 실수를 한 것으로 비춰진 것이다.

‘악마의 편집’에 따른 해프닝으로 치부될 수도 있었던 사안이 이렇게 확대된 것은 사실 귀국 직후부터 반 전 총장이 보여준 이른바 ‘민생행보’가 오히려 국민들에게는 “한국 현실을 모른다”는 비판을 낳았기 때문이다. 반 전 총장은 귀국 첫날인 12일부터 민생 행보에 열을 올렸지만 ‘1일 1실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지난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공항철도 표를 구입하기 위해 무인발매기에 지폐를 넣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특히 시민들의 비판은 ‘서민 코스프레’라고 불리는 겉핥기식 소통 행보에 집중돼있다. 반 총장이 지난 12일 시민들과 소통을 위해 공항철도를 타면서 승차권을 뽑기 위해 2만원권 두 장을 한꺼번에 무인발매기에 넣는 모습은 매일같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시민들에게 웃음거리가 됐다. 다음날인 13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는 과정에서는 반 전 총장이 미리 써온 쪽지를 참고해 방명록을 쓰는 모습이 포착돼 논란을 빚었다.

[영상] '턱받이 논란' 반기문, 가는 곳마다 '이슈메이커'(YTN)

반 전 총장이 더욱 비난을 받는 것은 그의 민생행보 속엔 국민에 대한 배려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반 전 총장이 충북 음성의 사회복지시설인 꽃동네를 방문해 거동이 힘든 노인에게 죽을 떠먹여주는 봉사활동을 한 과정도 논란이 됐다. 고령의 노인이 누워서 음식물을 섭취하면 자칫 기도가 막히거나 흡인성 폐렴을 초래할 수도 있는데 죽 먹이기를 강행한 것은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노인의 생명을 중시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4일 오후 충북 음성군 조류독감 거점소독소를 방문해 고압소독기를 이용해 방역작업을 체험해보고 있다. 음성=연합뉴스

같은 날 충북 음성의 조류인플루엔자(AI) 거점소독소에 방문해 방역 작업을 체험한 것 역시 ‘정치 쇼’를 위해 국민들을 위험에 노출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현장에는 취재진 등 여러 사람이 있었지만 반 전 총장을 비롯한 일부만 방역복을 입고 있었다.

AI 거점소독소는 감염 농가를 드나드는 차량을 소독하는 장소다. 농림축산식품부는 AI 확산 및 환경오염 방지를 위해 ‘AI 긴급행동지침’을 통해 이곳에서 사용한 소독약은 외부로 흘러가지 않도록 저류조를 설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했다. 방역 체험 중 자칫 소독약이 사방으로 튈 수도 있는 위험 상황에서 안전은 소홀히 한 것이다.

대부분의 실수가 현장을 방문에 사진 찍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예전에나 통했던 과시 목적의 사진찍기식 홍보 자체에 대한 거부감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민생 행보 계속하는 이유는 ‘5년 이상 국내 거주’ 규정 때문?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과에 따라 빠르면 4월에도 조기 대선이 가능한 상황에서 대선주자인 반 전 총장을 향해 매일같이 쏟아지는 비판은 그의 이미지에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가 민생 행보에 주력하는 이유는 ‘대통령 출마 자격 논란’ 이라는 발등의 불을 끄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헌법과 공직선거법은 대통령 선거 출마 자격에 대해 ‘거주규정’을 두고 있다. ‘선거일 현재 5년 이상 국내 거주하는 만 40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으로 규정한 것이다. 다만 ‘공무로 외국에 파견된 기간과 국내에 주소를 두고 일정 기간 외국에 체류한 기간’은 예외다. 반 전 총장은 유엔사무총장으로 재직한 지난 10년간 유엔 본부가 있는 뉴욕에서 상주했다. 예외가 적용되더라도 출마 자격이 있는지 논란이 일 수 밖에 없다. 반 전 총장의 장남 우현(44)씨 등 가족들조차 국적은 대한민국이지만 미국 뉴욕 등 모두 외국에 거주하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이에 대해 “반 총장은 태어나서 5년 이상을 국내에 거주했기 때문에 예외 조항을 불문하고 출마 자격이 있다”는 비공식 해석을 내놓았다. 그러면서도 공직선거법에 관련 규정이 마련된 배경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될 사람은 일정 기간 국내에 살며 민심 소재와 국가 실정을 알아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거주규정은 법률 문제 아닌 민심 문제

그러나 법 규정과 상관없이 ‘거주규정’은 민심이 요구하는 기준이다. 지난 11월 첫 번째 촛불집회부터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주말 집회에 참석한 김성두(67)씨는 “대통령이 재벌까지 동원해 국민이 아닌 정유라의 승마훈련만 지원한 게 가장 답답했다”며 민의를 귀담아듣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격은 대한민국 국민들과의 공감인 것이다.

따라서 반 전 총장이 ‘우려왕’ 에서 인정받는 대권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국민과의 진정 공감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 정치에 대한 지식은 단기간에 쌓을 수 있지만 ‘거주규정’에서 요구하는 국민 정서에 대한 이해는 단기간에 생기는 게 아니다”라며 “반 전 총장이 대권에 도전하기로 한 이상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공감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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