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자를 받으신 귀하는 1월 15일 18시 부로 근로계약이 만료되었음을 통보합니다. 귀하의 앞날에 무궁한 안녕을 빕니다.”
이틀 전 오후 6시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노조위원장인 경비원 허청환(60)씨는 두 문장의 문자로 해고를 당했다. 경비노동자 74명 전원에게 3개월짜리 근로계약 체결을 요구한 아파트 경비용역업체 ㈜에버가드에게 노조원들의 반대 의견을 전달한 지 2시간 만이었다. 다른 노조 간부 5명과 일반조합원 송용근(62)씨도 해고 문자를 받았다. ㈜에버가드는 ‘업무 미비’라는 사유를 댔지만 허씨는 노조를 깨기 위한 조치로 보고 있다.
17일 오후 허씨 등은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와 더불어 아파트 정문에서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신현대아파트는 2014년 11월 입주민의 횡포에 시달리다 분신해 숨진 이만수씨가 경비원으로 일했던 곳이다. 허씨는 “만수가 분신한 후 경비원 처우 개선을 위해 정말 열심히 싸웠다. 3개월짜리 근로계약서 하나에 우리의 노력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허탈해 했다.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에게 다시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2015년12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시내 경비원 10명 중 9명 이상이 60세 이상으로, 24시간 교대제로 일하며 월 150만원이 채 안 되는 임금을 받고 있다. 대부분 위탁업체 등에 고용돼 극심한 고용불안을 겪고 있다. 이 팍팍한 일자리마저 차츰 기계에 밀리는 처지다.
최근엔 1년 단위 계약도 모자라 3개월짜리 단기계약을 요구하는 아파트 위탁관리업체들도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8월 서울 도봉구 H아파트의 경비용역업체는 경비원 16명과 3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작성했고, 4명은 재계약을 하지 못해 해고됐다. 그 중 1명인 김동주(72)씨는 “용역업체가 입주자대표회의와 재계약이 불투명하다는 사정을 강조하면서 3개월짜리 계약을 요구했는데 결국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만 자른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8월 서울 강서구 동신대아 아파트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주민 동의를 구하지 않고 전자보안시스템을 도입 강행하면서 44명의 경비원을 해고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후 관리원 등 12명이 새로 고용돼 근무하고 있지만 고용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경비원 A씨는 “모두 해고가 된 후에 관리인으로 들어왔지만 우리도 파리목숨”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위탁업체가 얽혀있는 고용구조가 고용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류하경 변호사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일정기간 후 파견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는 방법으로 경비원들을 해고한다”며 “결국 쉬운 해고를 위해 위탁업체가 동원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위탁업체나 용역업체가 근로환경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데다, 경비원들도 행여나 밉보일까 봐 열악한 노동조건을 참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10%대에 머무는 경비원 직접 고용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공익인권법재단 김수영 변호사는 “위탁업체의 횡포나 이윤 논리로 경비노동자의 고용불안이 야기되는 상황이 많은 만큼 입주자대표회의에 의한 직접 고용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전 유성구 아파트 23곳은 경비노동자를 직접 고용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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