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절차가 빨라질 전망이다. 헌법재판소가 잠적한 안봉근 이재만 등 주요 증인을 직접 불러 신문하는 대신 검찰 조서로 대체하는 기준을 내놨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17일 제6차 변론기일을 열고 증거채택 원칙을 밝혔다. 주심 강일원 재판관은 “검찰 조서는 원칙적으로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다”며 “다만 모든 진술 과정이 영상 녹화돼 있거나 변호인이 참여해 작성된 조서는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원칙적으로는 법정 진술만 증거로 채택하되,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검찰 조서는 예외적으로 증거로 쓰겠다는 것이다. ▦당사자가 검찰에 가서 진술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검찰 조사 과정에 불법이 없고, 조사에 동석한 변호인이 검찰 조사를 마친 뒤 조서에 “진술한 대로 기재됐다”고 확인했다면 헌재는 이를 증거로 본다.
이렇게 되면 증인으로 채택된 안봉근 이재만 전 비서관이 19일 출석하지 않아도 이들이 검찰에서 진술한 조서 내용으로 신문을 대체할 수 있다. 헌재는 두 전직 비서관이 잠적하면서 출석요구서를 전달하지 못해 경찰에 소재파악을 요청했지만 찾지 못했다. 헌재는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상근부회장 등 46명에 대한 조서도 증거로 채택했다. 이들은 변호인이 동석해서 조사를 받았다.
박 대통령이 미르ㆍK스포츠재단 출연금 모금 지시를 했는지를 밝혀줄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은 1장만 채택됐다. 안 전 수석이 검찰 조사나 헌재 증인신문 과정에서 직접 확인하고 인정한 부분에 한정한 것이다.
그 동안 증거 채택을 놓고 입장 차를 보여온 국회 소추위원단 측과 대통령 법률 대리인단의 해석은 엇갈렸다. 소추위원단 측은 “수첩 일부만 채택됐지만 안 전 수석의 신문조서를 통해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반면 대통령 측은 “수첩을 압수할 때 영장을 제시하지 않았고, 적법하지 않게 수집된 증거로 작성한 조서도 불법”이라며 “안 전 수석의 조서를 증거로 쓰는 데 이의를 제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헌재는 그러나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인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의 피의자 신문조서는 대체로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검찰 조사 과정에 변호인이 참여했지만, 최씨가 압박수사로 인해 자유롭게 진술하지 못했다며 모든 조서를 증거로 쓰는 데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씨 소유로 알려진 태블릿PC 역시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다. 강 재판관은 “태블릿PC에 들어있는 내용에 대해 수사기관이 작성한 보고서는 채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25일로 예정된 더블루K 고영태 전 이사와 류상영 전 과장은 변호인 없이 검찰 조사를 받아 이들의 진술이 적힌 조서를 증거로 쓸 수 없다. 두 사람이 직접 헌재에 출석해 신문사항에 답해야 발언에 효력이 생긴다.
당초 이날 증인신문이 예정됐던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이 부회장, 고 전 이사와 류 전 과장이 모두 불출석하면서 기일이 미뤄졌다. 헌재는 고 전 이사와 류 전 과장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냈지만 이들이 잠적해 전달하지 못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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