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 때부터 총장 될 생각
법무장관ㆍ국회 입성 출세 가도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미공개 회고록에는 ‘권력을 좇는 검사’의 속성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직접적인 표현을 써 가며 이를 드러낸 것은 아니지만, 행간을 따라가다 보면 강렬한 ‘권력에의 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검사 임관과 함께 ‘검찰총장’을 꿈꿨다. 1964년 광주지검 검사로 첫 발을 뗀 그는 “나는 병아리 초임 검사 시절부터 장차 검찰총장이 될 검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검찰총수가 되려면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근무해야 할 것인가를 늘 생각하면서 행동했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시절 ‘법무부 검사→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청와대 법률비서관’ 등 이른바 ‘엘리트 코스’와 요직을 두루 거쳤다.
물론 ‘모든 검사는 검찰총장이 최종 목표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를 이상하게 볼 것만은 아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오히려 그의 검찰총장 취임 직전 일화다. 노태우정부 때인 88년 12월 법무연수원장에서 검찰총장에 오른 그는 당시에 대해 “나는 혹시 총장이 되지 못하고 그만둘 경우에 후배들 보기에 어떻게 의연한 모습으로 이 정든 검찰을 떠날 것인가 하는 것을 늘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며 “그래서 근무 중에 틈틈이 검찰총장 취임사를 초안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총장이 되면 이 취임사를 그대로 읽을 것이고, 만약에 못 되면 후일 회고록에 ‘읽지 못한 취임사’라는 제목으로 실으려 했다는 것이다.
90년 12월 퇴임한 그는 6개월 만인 이듬해 5월 법무장관에 올랐다. 인사권과 예산을 쥐고 검찰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의 정점에 오른 것이다. 92년 10월까지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2년 뒤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로부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이는 ‘야구단 구단주들이 협의해서 총재를 선정한다’는 KBO 정관에는 위배된다. 일종의 ‘밀실 내정’이었는데도 그는 자리를 수락했다.
96년 4월 총선에선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김 전 실장은 주변에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고 썼다. 하지만 공천을 받게 됐다는 연락을 받고는 곧바로 “내정 통보를 받고 그때부터 서류를 준비해서 제출”했다고 한다. 고사했다는 내용은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특히,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치러진 2008년 총선 직전 공천 탈락에 대해선 불만을 쏟아냈다. “김대중ㆍ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올바른 자유민주정부를 세우려고 열심히 투쟁하여 드디어 그 목표를 이루어 놓았는데, 상을 주기는커녕 공천탈락이라는 불명예를 안겨줬다”는 것이다.
김 전 실장은 “선비로서 평생 명예를 먹고 살았다”고 회고록에 썼다. 그에게 ‘명예’란 어느 자리에서든 자신의 소임을 묵묵히 하는 것이라기보단, 권력과 가까운 위치에서 권력을 향유할 때 비로소 누릴 수 있는 그 무엇이었던 셈이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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