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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지그문트 바우만

입력
2017.01.15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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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1일자 한국일보는 “‘영원한 이방인’ 지그문트 바우만, 하늘나라로 떠나다”란 제목의 기사로 지그문트 바우만의 별세를 알렸다. 기사는 그를 “현대사회를 ‘유동성’ 혹은 ‘액체성’(Liquid)이란 키워드로 파악하는 독특한 접근법으로 널리 알려진 사회학자"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바우만의 학문적 영향력은 사회학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한국의 노동법 학자들이 좋아하는 사회학자이기도 했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가 주목한 ‘유동성’이란 키워드가 우리가 경험하는 고용에도 투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단어가 ‘유연성’이란 낱말보다 지금 한국의 고용을 좀 더 또렷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유연한 고용이란 것은 정착할 만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겪는 단절적이고 떠도는 유동적 삶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나 역시 바우만의 ‘부수적 피해’(정일준 옮김ㆍ민음사ㆍ2013)와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안규남 옮김ㆍ동녘ㆍ2013)란 짧은 책에서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조금 더 분명하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자들은 고용 보호 입법으로 인해 일자리가 사라지고, 그나마 남아 있는 보호 조치마저 더 성글게 만들어야 근로자의 삶이 나아진다는 도그마를 퍼뜨렸다. 이 지배적 견해에 이론(異論)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법률적 논거 외에도, 현재의 삶에 대한 직관과 다른 방식의 삶에 대한 전망이 보충되어야 한다. 나는 바우만의 책에서 그것을 찾곤 하였다.

예컨대 ‘부수적 피해’ 서문의, “다리는 경간(徑間ㆍ교각과 교각 사이)들의 평균 강도를 초과하는 하중이 걸리는 시점에서 붕괴되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전에, 하중이 경간들 가운데 하나(가장 약한 경간)의 지지 능력을 넘어서는 순간 붕괴된다. … 전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가장 약한 경간 하나다”란 비유는 비정규직 문제와 사회적 양극화 등에 대한 문제의식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경제질서가 인간의 행복과 존엄성을 확보하는 수단이어야 한다는 그의 설명은 우리가 잊고 있던 민주주의의 의미를 재확인해 주었다. 바우만은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에 대응해서 정치공동체의 복원과 집합적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수단으로서 사회권을 제안했다. 그에 따르면, “사회권은 정치권을 ‘현실적인’ 존재로 자리 잡고 계속 작동하게 하는 데 불가결한 것이다”(‘부수적 피해’ 24면).

바우만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의 부작용, 예컨대 소득불평등과 고용불안정이 심화하는 현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으며 그에 대한 지식인의 책무를 강조했다.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에서 그는 “전 세계가 필사적으로 경제성장 근본주의를 밀고 나가고 있는데도, 빈곤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지속된다. 이런 현실 앞에서, 생각 있는 사람들이라면 잠시 멈춰 서서 부의 재분배로 인한 부수적 피해자들 못지않게 직접적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10면). 그 이유는 “현재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의 일차적 피해자는 민주주의가 될 것이다”라고 봤기 때문이다(11면). 즉, 불평등의 해소는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지키기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조치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백발의 사회학자가 2015년 굴뚝 농성 중이던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한글로 “힘내라! 김정욱, 이창근”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사진을 찾을 수 있다. 그 사진 속의 맑은 눈빛을 가진 한 사람이 제시한 희망과 실천적 전망은, 새로운 길을 찾던 많은 한국인들에게 격려가 되었다. 연합뉴스가 부고를 전하며 쓴 “자신의 사상을 통해 세계화 파고 속에서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란 짧은 평(評)은 그의 삶에 대한 적절한 헌사일 것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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