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소설가 이문열의 작품 제목이기도 했던 오스트리아 시인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이 시구는 절망 속에서도 다시 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로 해석된다. 하지만 불과 1년 전 180석을 내다봤던 집권여당이 맞나 싶을 정도로 끝도 없이 추락하는 새누리당을 보면 도대체 이 당의 바닥은 어디인지 묻게 된다.
돌이켜보면 4ㆍ13 총선 때 공천 막장극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친박계는 총선 참패로 정치적 명운이 다했는데도 당권을 놓지 않겠다고 버티다 ‘좀비’라는 해괴망측한 수식어까지 붙었다. 그런데도 친박이 버티자 탈당파가 신당을 창당할 때는 이게 종착역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현역 의원 99명으로 쪼그라든 새누리당이 ‘셀프 쇄신’을 하겠다며 원로 목사인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을 영입하면서부터는 더 스펙터클한 진흙탕 싸움이 펼쳐지고 있다.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재임 당시 ‘저승사자’로 불렸던 인 위원장을 영입한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신속히 환부를 도려내려면 노련한 칼잡이가 필요한 법이다. 영입 뒷얘기에선 쇄신의 절박성도 느껴졌다. 밤새도록 매달려 겨우 비대위원장 수락 약속을 받아낸 정우택 원내대표는 다음날 아침 “노모가 반대한다”며 인 위원장이 발을 빼자 언론에 먼저 인선을 발표하는 모험을 했다. 이후 인 위원장 자택 앞으로 달려간 정 원내대표는 1시간 30분 간 추위 속에 발을 동동 구른 끝에 집안으로 들어갔고 무릎까지 꿇어가며 사후 재가를 받았다고 한다.
미담은 여기까지다. 역시 의리론ㆍ배신론으로 무장한 친박계의 패거리정치가 문제였다. 대통령이 탄핵소추 당하고 국정은 파탄지경이지만 누구 한 명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다. 당장의 소나기를 피하면 살 길이 열릴 거라고 믿는 걸까. ‘인적청산 1호’로 몰린 8선 서청원 의원은 단연 압권이다. ‘차기 국회의장 밀약설’ 폭로전을 시작으로 색깔논쟁에 불을 지피고 상임전국위 개최를 실력 저지하더니 마지막엔 탈당을 강요했다고 형사고발까지 했다. ‘할복’, ‘악성종양’, ‘거짓말쟁이 성직자’ 등 험한 막말도 오갔다. 싸우면서 닮는다더니 인 위원장도 상임전국위원 ‘꼼수 면직’으로 회의 정족수를 맞추면서 신뢰에 금이 갔다.
뒤엉켜 싸운 진흙탕 싸움에서 누구 몸에 검댕이 더 묻었는지 따지는 일은 부질 없다. 중요한 것은 보수의 몰락이 가져올 폐해다. 우리나라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수십 년 동안 진보ㆍ보수로 나뉘어 경쟁해 온 체제다. 그런데 노무현정부에 대한 실망으로 보수 쪽으로 급격히 판이 기울었던 17대 대선 때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득표율 48.7%)가 보수에서 갈라져 나온 무소속 이회창 후보(15.1%)의 완주에도 불구하고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26.1%)를 더블스코어 가까운 차이로 이겼다. 한 쪽으로 심하게 기운 대선 결과의 여파는 익히 알고 있는 대로다. 이듬해 18대 총선에서 과반수를 확보한 여권은 오만하게 일방통행 식 국정운영을 고집하다 광장에 타오른 촛불로 미증유의 추락을 경험했다.
이번엔 반대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실망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보수정당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의 정당지지도는 겨우 10%를 넘기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 보수 성향 유권자가 어디로 가진 않는다. 반성으로 거듭난 ‘진짜’ 보수정당 중심으로 결집하든지, 투표를 포기하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새누리당이 죽어야 보수가 산다’는 인 위원장의 명제는 역설적이지만 맞는 말이다. 계속해서 막장극으로 정치 환멸만 줄 바엔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낫다. 그게 아니면 ‘살가죽을 뜯어내는’ 쇄신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런데 추락하는 새누리당에 과연 반등의 순간이 오기는 할까. 친박의 패거리 행태에 침묵하는 나머지 새누리당 의원들을 보면 고개를 젓게 된다.
김영화 정치부 차장 yaa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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