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 미래 길잡이 되겠다”
유엔 총장 재임 10년 내세워
‘국민 화합’을 대선의 화두로
설 연휴 이후 본격 세불리기 전망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국민 대통합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며 통합의 화두를 던졌다. 반 전 총장은 그러면서 “민생이 흔들리는데 발전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고 강조했다. ‘성장과 안보’라는 정통보수의 가치 틀에 스스로를 가두기보다는 중도ㆍ보수를 아우르는 통합의 대권 행보에 나설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특히 “광장의 민심이 만들어낸 기적,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하나가 됐던 좋은 국민을 기억할 것”이라는 말로 자신이 제시한 ‘통합’ 화두가 1,000만 촛불민심의 변화 요구와 닿아 있음을 분명히 했다.
반 전 총장이 이날 귀국 기자회견에서 첫 메시지로 던진 통합은 유엔 사무총장 재임 10년의 성과를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동시에 대선 주자로서의 잠재력을 보여줄 화두로 꼽힌다.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되는 파리기후협정이나 유엔 2030 지속가능개발목표(SDG) 등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SDG가 오는 2030년까지 추진할 새로운 개발 목표에는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산업화 ▦불평등 완화 ▦양성 평등 ▦양질의 일자리 등 17개 과제가 포함돼 있다. 반 전 총장은 “인류의 평화와 약자의 인권보호, 가난한 나라의 개발, 기후변화 대처, 양성평등을 위해 지난 10년간 열심히 노력했다”고 자평했다.
통합의 화두는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 떠오른 ‘사회·경제적 정의 실현’이라는 시대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반 전 총장이 “젊은이의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해서 길잡이 노릇을 하겠다”고 언급하는 등 청년, 젊은이를 거듭 거론하며 격차 해소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반 총장은 “나라는 갈갈이 찢어지고 경제는 활력을 잃고 사회는 부조리와 부정으로 얼룩졌다. 젊은이의 꿈은 꺾이고 폐습과 불의는 일상처럼 우리 곁에 버티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진보적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가 반 전 총장 곁에서 ‘경제 닥터’ 역할을 맡기로 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삭스 교수는 평소 부가 집중된 중·장년 은퇴 계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 마련한 재원을 청년에게 돌려주는 ‘세대간 부의 재분배’를 강조해 왔다. 반 전 총장 캠프에 참여한 곽승준 고려대 교수도 ‘따뜻한 시장경제, 진화된 자본주의 5.0’을 ‘반디노믹스’의 핵심으로 꼽고 있다. 곽 교수가 이명박 정부에 참여해 ‘녹색성장’을 MB노믹스의 뼈대로 세웠다는 점은 반 전 총장 경제정책의 방향을 가늠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아울러 통합은 ‘반기문 발 정계 개편’의 명분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반 전 총장은 당분간 제도 정치권과는 거리를 두고 일반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데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달 말 설 연휴가 끝나면 본격적인 세 불리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반 전 총장은 “겸허한 마음으로 제가 사심 없는 결정을 하겠다”면서도 “그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선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연대하는 ‘빅 텐트’ 시나리오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정치 세력 간의 단순한 이합집산으로 비춰질 경우 역풍을 맞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 전 총장이 귀국 메시지에서 “나라와 사회가 더 분열되는 것은 민족적 재앙”이라며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정권 자체가 아니라 정치 교체가 이뤄져야 할 때”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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