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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많은 '도깨비집', 곡절 많은 '도깨비 소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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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많은 '도깨비집', 곡절 많은 '도깨비 소품'

입력
2017.01.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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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두 남녀가 tvN 드라마 '도깨비'에서 도깨비(공유)의 집으로 나오는 운현궁 양관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최재명 인턴기자·화앤담픽처스 제공
지난 10일 두 남녀가 tvN 드라마 '도깨비'에서 도깨비(공유)의 집으로 나오는 운현궁 양관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최재명 인턴기자·화앤담픽처스 제공

“도깨비 보자” 서울 시내 한 복판에 ‘도깨비’ 찾는 사람들

10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덕성여대 종로캠퍼스 내 운현궁 양관(양옥집). 일곱 살 된 아이는 이모 정선영(43)씨의 오른쪽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제 됐다는 듯 정씨의 고등학생 딸이 그 모습을 휴대폰에 사진 촬영으로 담는다. tvN 금토드라마 ‘도깨비’에서 지은탁(김고은)이 도깨비인 김신(공유)의 가슴에 꽂힌 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검이 보여요”라고 한 ‘결정적’ 장면을 따라 한 것이다. 정씨는 “두근두근하며 드라마를 보고 있어 ‘도깨비집’ 구경 왔다”며 수줍게 웃었다.

정씨가 사진을 찍으러 온 운현궁 양관은 드라마 속 김신이 저승사자(이동욱)와 사는 집이다. 유럽풍 스타일의 화려한 디자인이 눈에 띄는 양관은 흥선대원군의 손자 이준용(1870~1917)이 살던 집이다. 아름다운 외관에 슬픔이 깃든 모습이 드라마와 묘하게 닮았다. 양관은 원래 일제가 흥선대원군을 감시하기 위해 운현궁이 바라 보이는 인근 언덕에 지은 서양식 건물이다. 이곳에서 신의 저주를 받은 ‘찬란한’ 도깨비 김신은 자신의 몸에 꽂힌 검을 빼줄 신부를 기다리며 수 백 년 동안 갖은 비극을 견뎌냈다. 드라마 인기 덕에 운현궁 양관은 새삼 관광 명소가 됐다. 방학을 맞아 매서운 겨울 바람을 뚫고 가족 혹은 연인과 함께 ‘도깨비집’을 찾은 드라마 시청자들이 이날도 줄을 이었다.

tvN '도깨비' 속 식탁 위 천장 선반에 올려져 있는 촛불들. 도깨비(공유)가 살아온 오랜 시간을 상징하는 소품이다. 화앤담픽처스 제공
tvN '도깨비' 속 식탁 위 천장 선반에 올려져 있는 촛불들. 도깨비(공유)가 살아온 오랜 시간을 상징하는 소품이다. 화앤담픽처스 제공

939살 먹은 도깨비 방이 텅 빈 이유

주인공인 공유와 김고은만 ‘열 일’ 하는 게 아니다. 시청자들로 하여금 ‘도깨비’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가 아름다운 영상이다. 이국적이면서도 낯선 공간과 세트, 소품들은 드라마에 신비감을 더한다. 이런 드라마 속 미술 장치들은 ‘제2의 작가’ 역할을 한다. 인물이 지닌 사연을 대신 보여줘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극의 상상력을 끌어 올린다. 시청자들의 관심이 집중된 도깨비집을 들여다보면 곳곳에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경기 남양주시 드라마 촬영장에 세트로 지어진 도깨비의 방과 저승사자의 방은 정반대 콘셉트로 설계됐다. 김신의 방이 고풍스럽다면, 저승사자의 방은 현대적이다. 둘 다 수 백 년 넘게 산 이들이지만, 인물이 처한 상황이 극과 극이라서다.

tvN 드라마 '도깨비' 속 저승사자(이동욱)의 공간은 도깨비(공유)와 달리 여러 물건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사람의 생과 사를 관장하는 존재인 만큼, 많은 사람들의 삶이 담긴 문서와 찻잔으로 공간에 무게감을 표현했다. tvN 제공
tvN 드라마 '도깨비' 속 저승사자(이동욱)의 공간은 도깨비(공유)와 달리 여러 물건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사람의 생과 사를 관장하는 존재인 만큼, 많은 사람들의 삶이 담긴 문서와 찻잔으로 공간에 무게감을 표현했다. tvN 제공

김신은 추억을 안고 사는 인물이라면, 저승사자는 과거를 잊은 채 살아간다. ‘도깨비’의 김소연 미술감독은 “김신에게 역사성을 주기 위해 방 벽면을 페인트로 겹겹이 칠했고, 반대로 저승사자의 방은 세월을 지우기 위해 모던하게 꾸렸다”고 말했다. 식탁 위의 천장에 장식 대를 달아 촛불을 수두룩하게 쌓아둔 것도 시간이 촛농처럼 흘렀다는 김신의 역사성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다. 도깨비가 사색에 잠기는 테라스 세트는 미국의 한 오래된 폐가 속 모습을 활용했다. 유독 빈 공간이 많은 김신의 방도 주목해야 한다. 939년이나 산 그의 방에 눈에 띄는 가구라고는 침대뿐이라 텅 빈 느낌마저 준다. 김 감독은 “사라질 날을 기다리며 사는 이의 삶은 공허할 거라 생각해 장식과 소품을 최소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저승사자의 작업실과 죽은 사람을 맞는 ‘찻집’에는 수납대가 빼곡하게 걸려 있다. 저승사자가 사람의 생과 사를 다루는 만큼, 그가 하늘로 데려간 사람들의 삶의 수와 무게를 층층이 쌓인 수납대로 표현했다. 도깨비집은 ‘신’들이 사는 곳이라서 그럴까. 촬영 관계자들도 함부로 발을 들여놓지 못한다. ‘도깨비’에 출연하는 한 배우의 매니저는 “도깨비집 세트 바닥이 대리석으로 돼 촬영 스태프들도 털신이나 발장갑을 신고 조심스럽게 올라간다”고 귀띔했다.

tvN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가 김고은에 건네는 메밀꽃다발은 소품 담당 스태프의 어머니가 기른 것이다. 화앤담픽처스 제공
tvN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가 김고은에 건네는 메밀꽃다발은 소품 담당 스태프의 어머니가 기른 것이다. 화앤담픽처스 제공
tvN '도깨비'의 저승사자(이동욱)가 망자에게 건네는 찻잔을 올려 두는 받침. 이응복 PD와 김소연 미술감독이 미국 뉴욕에서 직접 사온 못을 나무에 박아 만들었다. 못 머리에 적힌 숫자는 죽은 이의 생을 뜻한다. tvN 제공
tvN '도깨비'의 저승사자(이동욱)가 망자에게 건네는 찻잔을 올려 두는 받침. 이응복 PD와 김소연 미술감독이 미국 뉴욕에서 직접 사온 못을 나무에 박아 만들었다. 못 머리에 적힌 숫자는 죽은 이의 생을 뜻한다. tvN 제공

직접 기른 메밀꽃, 미국서 사온 못… 눈물 겨운 소품들

보기엔 화려하지만, 드라마 속 소품을 뜯어보면 구구절절 사연이 담겨 있다. ‘도깨비’ 제작 관계자에 따르면 김신과 지은탁의 로맨스에 불을 붙인 메밀꽃다발은 소품팀이 직접 꽃을 키워 만들었다. 김신이 강원 강릉시 주문진 방사제에서 지은탁을 처음 만나 메밀꽃을 주는 장면이 지난달 9일(3회) 방송됐는데, 이 촬영은 11월에 이뤄졌다. 가을이 제철인 메밀꽃을 미리 구해 꽃다발을 준비한다고 해도 일주일도 안 돼 시들기 마련. 겨울 초입 촬영을 대비해 소품 팀장은 어머니에게 부탁해 집에서 직접 메밀꽃을 길렀고, 드라마 촬영에 활용했다. 메밀꽃의 꽃말이 ‘연인’이라, 평소 주위에서 보기 힘든 메밀꽃을 두 사람의 ‘오작교’로 썼다는 후문이다.

지은탁이 코팅을 해 가지고 다니는 단풍잎은 ‘진짜 캐나다산’이다. 극중에선 지은탁이 김신을 따라 캐나다 퀘백으로 순간 이동해 가져온 나뭇잎으로 묘사되는데, 촬영을 위해 현지로 떠나기 전 그 단풍잎을 활용하는 내용이 정해져 국내에서 수소문해 캐나다 단풍나무와 동일한 종의 잎을 썼다. 저승사자가 죽은 이에게 생전의 기억을 잊으라며 건네는 차의 받침은 ‘도깨비’의 이응복 PD가 미국 뉴욕 중고 시장에서 사왔다. 나무에 못이 10여 개나 박힌 받침으로, 나무에 드릴로 구멍을 낸 뒤 못을 박아 사용한다. 못 머리 부분에는 각기 다른 숫자가 새겨져 있는 게 독특하다. 김 감독은 “망자의 삶을 숫자로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이 PD의 소품 수집에 대한 열정은 남다르다. 그는 촬영 차 머문 캐나다의 호텔에서 본 조명이 마음에 들어, 호텔 측에 직접 돈을 주고 조명을 사 ‘도깨비집’에 걸어뒀다. ‘도깨비’에 앞서 지난해 KBS2 ‘태양의 후예’에서도 이 PD와 함께 작업한 김 감독은 “이 PD가 ‘태양의 후예’ 때도 촬영 때 쓸 소품을 위해 함께 10여 일간 그릇시장을 돌아다니며 그릇을 사기도 했다”며 웃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tvN 드라마 '도깨비'에서 김고은과 공유의 사랑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단풍잎. 물 건너 온 '캐나다종'이다. tvN 제공
tvN 드라마 '도깨비'에서 김고은과 공유의 사랑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단풍잎. 물 건너 온 '캐나다종'이다.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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