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ㆍ대학 친구 김치하씨 “의협심 남달랐던 종철이”
오는 14일 30주기, 혜광고 동문 부산서 음악회ㆍ사진전
“종철이는 170㎝ 가량의 키에 평범한 체격, 피부도 뽀얗고 안경을 쓴 모범생 이미지였지만 의협심과 지구력은 누구보다 강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고 박종철 열사를 기억하는 친구, 김치하(53)씨의 말이다. 김씨는 박종철 열사와 부산 혜광고, 서울대를 함께 다닌 동기다.
김씨는 박종철 열사를 학창시절 꿈 많고 친구들을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으로 기억했다. 고교 때 방학기간 친구들과 해운대, 태종대를 누볐고 밤새 동기들의 집을 돌며 함께 공부했다고 한다. 김씨는 “종철이 집에서 시험기간에 밤샘 공부를 하다가 종철이 아버지의 포도주를 몰래 꺼내 마신 기억도 난다”고 말했다.
다만 시대상황에 대한 인식은 남달랐다고 했다. 김씨는 “언론환경이 척박한 시대였지만 종철이는 서강대를 나온 형으로부터 사회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생각한 것 같다”며 “다른 학생들과는 80년대를 바라보는 눈이 달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재수생 시절 둘은 서울에 있는 김씨의 서울 누나집에서 7~8개월을 함께 살았단다. 이듬해 서울대 인문대학에 나란히 했고, 대학시절 신림동 녹두거리의 술집에서 사회상을 화두로 술잔을 기울였다. 김씨는 “종철이는 자기 안위보다 어려운 여건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말했다.
비보는 급작스레 날아들었다. 김씨는 “종철이가 죽고 이틀쯤 뒤였나? 내 아버지 기일이라 제사를 모시려고 하는데 기자에게서 종철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회고했다.
“믿기지 않고 멍했다. 큰일이 났다는 생각뿐이었다. 순간 종철이 부모님이 걱정됐다.”
김씨는 그날 밤 신림동 녹두거리에서 친구들과 모여 대책을 논의했고, 이튿날에는 부산으로 내려와 박종철 열사의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절을 찾았다고 했다.
김씨는 현재 박종철 30주년 기념행사 추진위원회 기획팀장을 맡아 사망 30주기를 맞는 14일 부산에서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김씨는 “부산 행사로 30년간 친구들 가슴 언저리에 남았던 부채의식이랄까, 아니면 마음의 빚들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종철이를 기념하고 친구들을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종철 열사의 친구들인 부산 혜광고 28회 동기회와 총동창회는 14일 오후 6시 부산 중구 광복동 야외무대에서 ‘친구 종철이를 그리워하며’라는 제목으로 음악회와 사진 전시회를 연다. 사진전은 박종철 열사의 유년기, 고교시절, 대학시절 등을 담았다. 동문들은 직접 바이올린, 색소폰 연주, 뮤지컬 공연을 준비했다.
혜광고 28회 동기회는 이번 행사에 박종철 열사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다. 30년의 세월을 넘어 반 백세를 맞은 친구들에게는 ‘열사’보다 ‘종철이’라는 이름이 익숙하다.
차민철 ‘박종철 30주년 기념행사’ 추진위원장에게도 박종철 열사는 광복동 고갈비를 유난히 좋아했던 친구이자 동문으로 기억된다. 차 위원장은 “종철이가 세상의 큰 전환점을 남기고 떠난 지 벌써 30년이 흘러 우리도 부모 나이가 됐다”며 “종철이와 소주 한잔 하고픈 생각에 동기들이 조촐히 준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치ㆍ사회적 이념을 떠나 많이 방문해서 종철이를 떠올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산=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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