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다 됐어요. 매일 출근해야 하는 라디오 덕에 성실하게 살고 있죠. 라디오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못했을 겁니다.”(정찬우)
“아들이 태어나던 해에 ‘컬투쇼’를 시작했는데 그 아이가 벌써 초등학교 5학년이에요. 아이가 자라듯 저도 라디오와 함께 성숙해졌습니다.”(김태균)
개그 듀오 컬투가 나른한 오후 2시를 책임져온 세월이 10년 하고도 9개월째다. 2006년 5월 1일 처음 전파를 탔으니 넉 달 뒤면 만 11년을 꽉 채운다. 초반엔 “얼마나 오래 갈 수 있겠나” 생각했다는데, 그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디 그뿐인가. 10년 연속 라디오 전체 청취율 부동의 1위다. 컬투의 현란한 입담으로 소개되는 기상천외한 사연들은 ‘레전드’로 묶여서 수년째 회자된다. 2014년에는 라디오 프로그램 최초로 SBS 연예대상 최우수상도 받았다. SBS 파워FM ‘두시탈출 컬투쇼’의 10년 이력이다.
10일 서울 목동 SBS에서 뒤늦은 10주년 기자간담회를 가진 정찬우(49)는 “10년이 한결같이 즐겁다는 건 거짓말이고 솔직히 지겨울 때도 있다”고 소회를 털어놓으며 “가식 없는 솔직함과 파격적인 형식”을 장수의 비결로 꼽았다. 김태균(45)도 “우리가 그만두고 싶어도 이젠 그럴 수 없는 프로그램이 됐다”며 “20년 넘게 호흡을 맞춰온 컬투의 팀워크가 청취자들께 좋게 다가간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때때로 자신이 소진됐다고 느낀다고 고백했다. 청취자를 가르치려 하거나 마치 인공지능 알파고처럼 기계적으로 웃기려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서글퍼지기도 했다. 장수프로그램의 숙명이다. 정찬우는 “내가 나이 들었듯이 청취자들도 함께 나이 들지 않았겠냐”며 “새로운 걸 추구하기보다는 편안하게 놀듯이 원래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게 답인 것 같다”고 말했다.
힘든 시기도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때였다. 웃음을 줘야 하는 ‘컬투쇼’도 과묵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다시 힘을 내는 건 청취자들 덕분이다. 잊을 수 없는 사연이 수두룩하다. 유럽에서 현지인에게 휴대폰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가 그 사람이 휴대폰을 들고 도망가버렸다는 황당 사연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 방송을 듣고 있던 한 청취자가 불현듯 아이디어를 떠올려 셀카봉을 개발했다고 한다.
‘뚜껑’이라는 이름의 강아지 사연은 특히 유명하다. “뚜껑아 밥 먹자”라고 말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굶는 강아지가 걱정된 한 청취자가 “출근하면서 라디오를 틀어놓을 테니 오후 2시 반쯤에 라디오로 강아지에게 밥 먹으라고 말해달라”는 부탁에 컬투는 6개월간 강아지 밥을 먹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감명 깊었던 사연은 스스로 삶을 등지려 한강으로 가던 택시 안에서 ‘컬투쇼’를 듣다가 자신도 모르게 웃고 있는 걸 깨닫고는 다시 삶의 희망을 얻었다는 이야기였다. 김태균은 “청취자들과 희로애락을 나누면서 정말 가족 같은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컬투쇼’의 자산인 청취자 사연으로 지난해엔 ‘돌고 돌고 돌고’라는 단편영화도 만들었다. ‘족구왕’의 우문기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국내의 한 단편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다가오는 새로운 시간을 바라보며 정찬우는 “1등에서 내려오면 그만둘 것”이라고 했다. “언젠가 내려올 그날까지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다짐의 또 다른 표현이다. 김태균은 “요즘 같은 시국에 국민들을 웃길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면서 더 강력한 웃음폭탄을 약속했다.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재치 있게 덧붙였다. “최순실씨를 게스트로 초대하고 싶다. 면회를 가야 하나 싶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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