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미국 우선주의’ 태풍이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 유럽, 중국, 일본 등 교역 상대국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주요 다국적 기업이 트럼프 위협에 굴복, 미국에 일자리를 공급할 대규모 투자를 앞다퉈 약속하고 나섰다.
9일(현지시간) 미국 언론에 따르면 멕시코에 대미 수출용 자동차 공장을 세울 경우 35%의 고율관세 보복을 가할 것이라는 트럼프 당선인의 엄포 이후, 포드와 피아트 크라이슬러(FCA)에 이어 일본 도요타까지 백기를 들었다.
짐 렌츠 도요타 북미법인장은 이날 디트로이트 오토쇼에서 “앞으로 5년간 미국에 100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은 나흘 전 ‘도요타가 멕시코에 공장을 건설할 경우 막대한 ‘국경세’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포드 역시 레인저 픽업트럭 등의 새로운 모델 출시를 소개하면서 이들 모두 미국 미시간공장에서 생산될 것이라고 밝혔다. 포드는 앞서 지난 3일 멕시코에 대한 16억 달러 투자 계획을 철회하는 대신 미시간에 7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미시간과 오하이오의 2개 공장을 현대화하는데 10억 달러를 투자하고 2,000명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던 FCA의 최고경영자 세르조 마르키온네는 오토쇼 현장에서 “미국의 수입 관세가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면 멕시코 공장의 경제적 타당성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 혼다, 독일의 다임러와 폴크스바겐 등 미처 트럼프의 타깃이 되지 않은 글로벌 자동차업체들도 제각기 준비해 놓은 미국 공장 증설계획을 언론에 잇따라 흘렸다.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의 적극적인 호응에 대해, 트럼프 당선인은 즉각 환영 의사를 밝혔다. 자신의 트위터로 FCA와 포드의 투자 계획을 언급하고, ‘포드와 FCA 모두에 고맙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다만 미국 최대 자동차 업체로 강력한 로비력을 갖춘 GM은 트럼프의 엄포에도 멕시코 투자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메리 바라 GM 최고경영자는 “트럼프 때문에 기존 계획을 바꿀 일은 없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은 GM의 사뭇 다른 대응의 이면과 관련, 트럼프 진영과 별도의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날을 바짝 세워온 중국의 대형 온라인유통업체 알리바바도 미국에 100만개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며 트럼프 달래기에 나섰다. 이날 뉴욕 맨해튼의 트럼프타워에서 만난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과 트럼프 당선인은 이후 1층 로비에서 기자들에게 이 같은 투자계획을 공개했다. 트럼프 정권인수팀은 미국 소기업이 중국에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미국에서 1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방안이 논의됐다고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은 ‘루이뷔통’ 브랜드로 유명한 프랑스 패션업체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최고경영자를 만나, 미국 투자 계획을 약속받았다. LVMH는 노스캐롤라이나 주 등 두 곳에 공장을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쯤 되자 한국 대기업들도 떠밀리다시피 미국 투자 계획을 서둘러 미국 언론에 내놓기 시작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전문 언론들은 “LG가 세탁기와 냉장고 생산 시설에 대한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키로 했으며, 삼성도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식(20일) 이전에 비슷한 내용의 투자 계획 공개를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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