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라스베이거스 모터쇼? 자율주행차 박람회?
한국의 자율주행차 현주소, 아직 갈 길 멀어
자율주행차가 일반화되면 바뀌는 일상
CES 2017, 자율주행차의 세계적 흐름 한눈에
시장조사 기관 HIS에 따르면 2035년 전 세계 자율주행차의 연간 판매량은 2,100만 대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각 완성차와 IT 업체, 부품 업체들은 경계를 가리지 않고 협력하며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들 중 75% 이상이 합작사 설립이나 인수보다는 협업을 통한 공동 개발 전략을 택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번 CES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 8일(현지 시각) 막을 내린 세계가전박람회(CES)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자율주행차’였다. 10개가 넘는 전 세계의 완성차 업체가 부스를 마련하고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신기술을 선보이며 ‘미래의 차=자율주행차’ 공식을 주장했다.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회사 패러데이 퓨처의 FF91은 4일 공개 후 36시간 만에 사전예약 6만 대를 넘기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자율주행을 위해 10개의 카메라, 13개의 레이더, 12개의 센서를 달았다. 또한 LG화학의 130kWh짜리 원통형 배터리가 탑재돼 한 번 충전으로 최대 600㎞를 달릴 수 있다. FF91은 오는 2018년부터 고객 인도를 시작한다.
BMW는 인텔, 모빌아이와 함께 올 하반기에 약 40대의 자율주행차를 시범 운행한다고 선포했다. BMW는 주행 제어, 파워트레인과 전장 부품 통합, 프로토타입 제작 등 전반적인 플랫폼을 맡는다. 인텔은 고성능 컴퓨팅, 모빌아이는 서라운드 뷰 등의 비전 프로세서를 제공한다. 이들은 추후 자율주행 플랫폼의 개발을 더욱 체계화하기 위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출시한다고 밝혔다.
현대는 자사의 최신 ‘LiDAR(레이저와 레이더를 기반으로 한 탐지 시스템)’ 기술과 함께 자율주행으로 움직이는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실제 도로에서 시연했다. 이 차는 미국 자동차공학회(SAE)가 분류한 5단계 자율주행 중 ‘레벨 4’에 부합한다. 부스에선 VR을 통해 자율주행을 가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했다.
토요타와 혼다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율주행 콘셉트카 ‘유이’와 ‘뉴브이’를 각각 공개했다. 폭스바겐은 지난 파리모터쇼에서도 선보인 바 있는 자율주행차 ‘I.D.’를 다시 전시했다. 이 밖에도 부품업체 보쉬와 전자업체 파나소닉도 자율주행 콘셉트카를 전시하며 미래 전략을 드러냈다.
완전 자율주행 시대는 2030년으로 예견됐다. 기조연설자로 나선 카를로스 곤 르노 닛산 얼라이언스 사장은 이번 CES에서 “2030년까지 사람의 조종이 필요 없는 AI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할 예정”이라며 “‘배출가스 제로, 사망자 제로’가 목표’라고 말했다.
국내 자율주행차는 어디쯤?
국내에도 자율주행의 움직임이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5년 5월 ‘자율주행차 상용화 지원 방안’을 내놓으면서 “자동차 선진국에 비해 다소 뒤떨어진 자율주행 기술개발을 촉진하는 한편, 자율주행차의 조속한 상용화를 위해 규제 개선 등 제도를 정비하고 인프라를 조기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대 제네시스로 교차로에서 교통신호와 차를 스스로 인식해 정지하거나 좌회전할 수 있는 기술을 테스트했다. 지난해 2월에는 개정된 자동차 관리법에 따라 자율주행차의 임시 운행 허가 제도가 시행됐고, 9월에 시가지를 포함한 전국 모든 도로에서 자율주행차 시험 운행을 할 수 있도록 개선됐다. 또한, 자율주행을 위한 테스트 베드로 경기도 화성에 ‘K-City’를 조성하는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다. 국토교통부는 2026년엔 한국도 레벨 5에 이르는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는 한편, 2035년엔 국내에 판매되는 신차 중 자율주행 기술이 탑재된 차의 비중이 약 75%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발맞춰 현대차는 자회사 모비스와 함께 자율주행차 기술에 박차를 가하며 구글과 시스코 등 IT 회사들과의 협력도 아끼지 않고 있다. 현대차는 2020년까지 V2X(Vehicle to Everything)를 기반으로 한 레벨 5 자율주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네이버는 국내 중소기업, 토요타와 협력해 자율주행 시스템을 시험 중이다. 도로안전공단은 이미 성능 시험을 끝내고 일반 도로를 달릴 수 있도록 허가했다. 현재 네이버의 자율주행 기술 수준은 레벨 3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우현 의원(국토교통위원회)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2015 산업기술수준조사’에 따르면 조사 당시 국내 자율주행차 기술 수준은 유럽의 79.9%에 그치고 미국과 일본에 비해서도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와 관련된 법 개정도 필요하다. 국내 현행법은 교통사고의 책임 주체를 운전자로 두고 있지만, 운전자가 없는 자율주행차는 책임 소재를 가리기 모호하다. 열악한 전기차 충전 인프라도 문제다. 소프트웨어로 제어되는 자율주행차는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내연기관 차보다 구조가 단순한 전기차를 기반으로 개발하는 경우가 많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으로 미국은 6.6대당, 일본은 3.2대당, 중국은 3.8대당 충전기가 하나씩 보급된 것에 비해 한국은 17.1대당 하나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율주행차가 가져올 소소한 변화
지난 2015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 오토쇼에서 메르세데스 벤츠의 디터 제체(Dieter Zetsche) 회장은 자율주행 콘셉트카 ‘F 015 럭셔리 인 모션’을 공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래의 럭셔리는 시간과 공간입니다.” 운전 대신 누군가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영화를 볼 수도 있다. 게임을 즐길 수도 있고 업무에 필요한 자료를 검토할 수도 있다. 남들이 교통 체증에 갇혀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때 운전대에서 손을 놓은 누군가는 그 시간에 ‘딴짓’을 할 수 있고 이는 곧 미래의 경쟁력이 된다. 이는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고 있는 모든 자동차 회사의 목표다.
UC 샌디에이고에서 로봇과 컴퓨터를 가르치는 헨릭 크리스텐슨(Henrik Christensen) 교수는 최근 샌디에이고 유니온 트리뷴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율주행차가 일반화된다면 우선 택시와 트럭 기사와 같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카카오 택시’처럼 택시는 모바일 앱으로 부르거나 더 나아가 행인의 손짓을 인식하고 자동으로 서는 택시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차가 스스로 운전을 대신해주니 대리 기사도 필요 없다. 트럭은 이미 현실화됐다. 지난 2015년 다임러의 프라이트라이너 인스피레이션 트럭은 미국 네바다 주를 자율주행으로 달릴 수 있는 번호판을 받았다. ‘하이웨이 파일럿’ 기술을 통해 고속도로에서 자율주행으로 달릴 수 있다. 화물 운송 분야에 자율주행이 상용화되면 효율이 높아져 물류비용이 줄고 졸음운전도 막을 수 있어 더 안전하다.
지금 태어나는 세대는 운전이 낯설어질 수 있다. ‘운전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BMW는 브랜드 전략 궤도를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동차 회사들은 강력한 파워트레인보다 전장 부분과 제어 소프트웨어에 좀 더 공을 들일 것이며, 차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강화할 것이다. 디자인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다. 지난 2015년 11월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 행사장에서 BMW의 전 수석 디자이너 크리스 뱅글(Chris Bangle)에게 미래 차의 디자인에 관해서 물었던 적이 있다. 그는 “누가 우버나 택시의 디자인을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미래의 차 디자인도 아마 그렇게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시내에는 주차장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출근한다면 목적지에 내린 후 다시 퇴근 후에 데리러 오도록 설정만 하면 된다. 차는 스스로 지정된 차고지로 돌아가 있다가 시간이 되면 교통 상황과 경로를 계산한 후 늦지 않게 승객이 있는 곳으로 찾아올 것이다. 이렇게 되면 차를 소유할 필요도 없다. 차는 공유 경제에 따라 ‘서비스’가 될 것이다.
보안과 관련된 산업은 더욱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자율주행차는 커넥티드 전자 제품이다. 대부분 전기 모터로 구동되며 소프트웨어가 제어한다. 바깥세상과 연결돼 있어 언제 어디서든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조종할 수 있다. 즉, 해킹의 가능성이 있다. 이는 목숨과 연결된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또한, 이용자의 이동 경로와 내역 등의 개인 정보가 유출돼 범죄에 악용될 수도 있다. 이를 막으려면 완벽한 보안 프로그램과 자율주행에 관한 개인정보 이용법 등 새로운 법과 제도가 필요할 것이다.
조두현 기자 joe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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