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부상한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회원국들과 정상회담을 연이어 가지며 동남아 끌어안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글로벌 기업들을 향해 연일 ‘미국 투자’를 압박하는 등 미국의 ‘신고립주의’가 현실화하자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이 틈을 타 아세안 국가들을 우군으로 편입시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9일 베트남 정부에 따르면 베트남의 권력서열 1위인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이 오는 12일부터 15일까지 중국을 공식 방문한다. 작년 1월 쫑 서기장의 연임 이후 첫 중국 방문으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초청에 따른 것이다. 베트남 정부는 쫑 서기장의 중국 방문에 대해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강화를 위한 방문”이라고 밝혔다.
양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비롯한 외교 현안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 행동선언(DOC)’과 관련, 후속조치로 구속력 있는 이행 방안을 담은 행동수칙(COC)의 조속한 제정 필요성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DOC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악화 방지를 위해 2002년 중국과 아세안이 채택했지만 중국은 인공섬 건설 등 영유권 강화에 주력하면서 COC 제정에는 소극적이었다.
이 외에도 중국은 베트남에 경제 협력이라는 큰 ‘당근’을 제시할 가능성도 높게 점쳐진다. 앞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과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도 지난해 중국을 찾아 큰 투자 약속을 받았다. 라작 총리는 중국 해군 초계함 4척을 사들이기로 하면서 340억달러(약 40조원) 규모의 투자협정을 체결했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240억원(약 27조원) 규모의 경제협력 약속을 받아냈다.
베트남의 경우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통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트럼프 당선인이 세계 최대 경제권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폐기를 주장하고 있고, 현실화 할 경우 TPP 최대 수혜국가로 꼽힌 베트남 자국 경제에 작지 않은 파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TPP 대신 중국 주도의 RCEP로 갈아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라오스, 캄보디아 등 전통적 우방국 외에도 적지 않은 아세안 국가들이 이미 중국으로 기울었다. 특히 미국의 전통적 우방인 필리핀의 변화가 눈에 띈다. 산티아고 로마나 신임 베이징 주재 필리핀 대사는 지난 2일 AFP와의 인터뷰에서 “두테르테 대통령 이전의 필리핀은 미국에 편향돼 있었다”며 “미국과의 동맹을 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과의 ‘신밀월’을 향한 아세안의 경제대국 태국과 말레이시아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다. 태국은 2014년 군부가 주도한 쿠데타 이후 미국 정부가 조속한 민정 회복을 요구하며 군사 지원을 동결하자 연례 군사훈련 규모를 축소하며 미국과 거리 두기에 나선 모양새다. 반면 중국과는 고위 인사 교류를 확대하고 중국산 무기와 장비 수입을 늘리는 등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또 말레이시아는 작년 초까지만 해도 중국과 남중국해 문제 등으로 껄끄러운 관계였지만 미 법무부가 말레이시아 국유펀드 1MDB 자금세탁 등 혐의로 기소하자 미국 정부에 강력 반발하며 중국에 손을 내밀기도 했다.
정민승 기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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