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대란’진풍경
단백질 보충 위해 두부ㆍ참치 불티
김밥엔 계란 지단 사라지고
노량진 식당가선 아예 자취 감춰
“냉장고 계란 칸이 빈 지 한 달이 넘었어요.”
직장인 윤모(29ㆍ여)씨는 매일 아침식사를 자취생의 ‘소울푸드’인 간장계란밥으로 해결해왔다. 요리할 시간도, 솜씨도 없는 바쁜 직장인에겐 계란프라이와 버터, 간장만 있으면 한끼를 든든히 해결할 수 있는 간편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윤씨의 아침은 시리얼로 대체된 지 오래다. 요즘 계란 한 판 값이면 시리얼 2통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윤씨는 “계란 덕분에 나름 건강한 자취생활을 했는데 요즘엔 너무 비싸 엄두도 못낸다”며 한숨을 쉬었다.
조류인플루엔자(AI) 파동으로 계란 값이 치솟으면서 청년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금란(金卵)이 된 탓에 가장 값싸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단백질 공급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9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한달 전 한 판(30알)에 5,814원이던 계란값은 이날 9,142원까지 치솟았다.
가벼운 주머니로 배를 채워야 하는 공무원시험 준비생에게는 더 큰 타격이다. 서울 노량진 학원가 식당 메뉴에선 계란요리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H분식 주인 이모(61)씨는 “5,000원짜리 메인메뉴를 시키면 계란찜을 함께 만들어줬지만 요즘 그 가격에는 불가능해 결국 계란을 뺐다”고 말했다. 김밥에 계란으로 만드는 지단을 없애거나 크게 줄이는 분식점도 속속 늘어나 맛까지 크게 떨어지는 실정이다. 노량진의 한 마트에서 장을 보던 공시생 정모(23ㆍ여)씨도 계란 매대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한 알에 500원에 가까운 계란 값에 깜짝 놀란 것이다. 정씨는 “생활비를 아끼려 식당에 가는 대신 직접 밥을 해먹는데 요즘엔 계란 하나를 깰 때마다 사치하는 기분”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달걀파동에 대체품으로라도 건강을 챙기겠다는 청년들도 많아졌다. 이른바 ‘단백질 사수작전’이다. 직접 만든 샌드위치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던 직장인 김은주(27ㆍ여)씨는 계란 대신 맛살을 넣어 빠듯한 예산을 맞추고 있다. 자취생들이 많은 대학가 앞 상점에는 두부ㆍ참치캔 코너가 텅 비는 일도 많아졌다. 서울 광진구 한 편의점에서 일하는 황모(21)씨는 “삶은 달걀은 이전보다 값이 두 배라 평소보다 훨씬 덜 나가는 대신 두부를 찾는 사람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일선 군부대도 농협이 계란 납품 물량을 30% 이상 줄이자 장병들의 영양 균형을 챙기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실제로 수도방위사령부(서울), 55사단(용인) 등에서는 계란반찬이 자취를 감췄다. 국방부 당국자는 “소시지 등으로 대체 급식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계란이 귀하다 보니 선물이나 사은품으로 쓰이는 웃지 못할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직장인 최재욱(34)씨는 최근 여자친구의 30살 생일을 맞아 계란 한판을 선물하고 이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인증했다. 최씨는 “요즘처럼 계란 보기 어려운 상황에선 금처럼 귀한 선물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원의 한 헬스장은 신규회원에게 구운 계란을 사은품으로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트레이너 최모(32)씨는 “올해가 닭의 해인데다 계란 값이 많이 올라 효과적인 마케팅이 될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달걀대란 극복을 위해 외국산 알 가공품 수입을 한시 허용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는 “달걀파동으로 취업준비생, 청년 1인 가구, 사회적 약자의 고통이 상대적으로 커졌다”며 “조류독감 사태가 터질 때 정부의 위기대처능력 부재가 일파만파의 악영향을 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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