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부터 병원 근처가 시끄러웠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주민과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끼리 시비가 붙은 것이다. 한 주민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다 사람이 조류독감에라도 걸리게 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라며 호통을 쳤다. “고양이들을 죄다 포획해서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평소 길고양이에게 밥 주는 것을 마땅치 않아 했던 아저씨는 조류독감에 감염된 고양이 기사를 본 모양이다. 동네 주민과 한바탕 한 캣맘은 자기도 정확하게 모르니 그런 시비에 반박하지 못했다고 눈물을 흘렸다.
“근데, 선생님, 저도 솔직히 조금은 걱정이 되요.” 캣맘은 길고양이들이 조류독감에 걸릴 수 있다면 이들에게 밥을 주는 사람도 감염될 수 있는 지, 밥을 줄 때 길고양이를 만졌다가 집에 기르는 반려동물에게도 전염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이런 불안은 캣맘의 문제만은 아니다.
경기도 포천의 고양이 2마리가 조류인플루엔자(AI)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기사가 나온 후 동물병원에 다양한 문의전화가 오고 있다. 조류독감 예방을 위해 인플루엔자 백신을 맞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의부터, 길고양이에게 밥을 줘도 되는지, 집에 사는 고양이가 기침을 하는데 조류독감은 아닌지, 강아지를 산책시켜도 되는지 등 보호자들은 많이 불안해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심해도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사람이 고병원성 조류독감에 걸린 사례는 없다. 지금 유행하는 고병원성 조류독감인 H5N6형이 중국에서 인체감염 발생했지만, 이 경우도 모두 감염조류에 직접 접촉한 사람들이 감염된 것이다. 고양이가 감염되었다고 해도 그 고양이가 다시 사람한테 조류독감을 옮길 확률은 거의 없다. 고양이가 고병원성 조류독감을 사람에게 옮긴 사례는 전세계에 단 한 건도 없다.
이번에 발생된 고양이의 조류독감 감염 원인은 조류독감에 걸린 가금류를 고양이가 먹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먹지 않는 이상 감염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또한, 고양이들의 정확한 폐사 원인이 조류독감 때문인지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신종플루백신을 맞는다고 조류독감을 예방할 수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독감예방접종을 한다고 해서 조류독감을 예방할 수는 없다.
단순히 야생조류의 배설물을 고양이나 강아지가 지나가다가 밟는 정도로는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감염되지 않는다. 구강을 통해 고농도의 바이러스가 들어가야 감염될 수 있다. 개나 고양이가 조류독감에 감염되는 경우는 조류독감에 걸린 조류를 날것으로 먹었을 때만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집에서 살고 있는 반려동물이 조류독감에 감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조류독감 발생지역이나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반려동물의 산책은 물론 가능하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다면, 접촉하고 난 뒤에는 비누로 손을 깨끗하게 씻으면 된다. 기본적인 위생관리만으로 예방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된다면 마스크나 일회용 비닐장갑을 착용하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감염의 위험보다는 ‘지나친 공포심’이 오히려 문제다. 포천일대에서 감염된 고양이가 발견되었으니 그 지역에 있는 길고양이를 포획해서 살처분 하는 것이냐는 이야기도 잠깐 나왔다는데, 얼토당토 않은 얘기다. 그렇게 따지면 자연환경은 온 사방이 감염원이다. 참새도 비둘기도 날아다니는 거리에 모든 새들이 조류독감의 감염매개체인 셈이다.
모든 바이러스는 변이가 가능해 고병원성 조류독감 바이러스 역시 인체 감염 확률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감염예방에 관심을 갖고 주의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너무 불안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불안은 동물들한테나 사람한테나 좋지 않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하지 않는가.
박정윤 수의사(올리브 동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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