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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거짓은 강물처럼

입력
2017.01.0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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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기로 거짓말을 전문으로 삼는 직업은 소설가가 유일하다. 소설은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며서 들려주는 것이고, 소설가와 독자는 그것이 거짓으로 꾸며댄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용인하는 관계다. 더 그럴듯한 거짓 이야기를 할수록 더 많은 찬사를 받는 직업이 소설가 말고 또 있을까. 현실의 인간관계에서는 불가능한 조건이기 때문에 소설은 가장 재미 요소가 많은 예술장르가 되었다(물론 지금은 아니다).

그렇지만 독자들은 언제나 더 많은 재미와 감동을 원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소설가들의 고민은 깊다. 단순한 거짓 이야기만으로 언제까지 독자를 붙잡아둘 수는 없으므로 온갖 사조와 기법이 발전하였다. 소설 이론 따위를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독자들로 하여금 진실인지 거짓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기법 중에 소위 메타픽션이라는 게 있다. 요즘 지면을 어지럽히는 동년배의 작가 이인화(본명 류철균)의 출세작 ‘영원한 제국’이 그런 기법으로 쓰인 소설이다. 소설 속에 실제와 허구를 뒤섞어 읽는 동안만큼은 소설 속 세계에 독자를 갇히게 만드는 기술의 일종이다. 변형이 불가능한 역사 사건에 허구를 섞는다 하여 팩션(팩트와 픽션)이라고도 불리는데 흥미를 유발하는 강력한 기교라 하겠다.

물론 그 비슷한 기법은 이미 중세의 ‘돈키호테’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휘황찬란한 거짓말의 대부인 보르헤스를 위시한 남미 문학이 진즉에 성취한 것이기도 하다. 외국 예 말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수백년 전 재기 넘치는 무명의 작가들이 펼친 신공이기도 했다. 가짜 책을 만들어 그 안에 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을 섞고 행적을 만들어 붙이는 식이었다. 이를테면 이성계가 요동을 정벌할 때 휘하의 장수로 슬쩍 가짜가 들어가고 그 가짜가 훗날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기록으로 남긴다. 여기에 더해 그 가짜 장수의 생몰연대와 묘비명이 들어간 가짜 비석을 세우고 탁본까지 마치면 우리 역사에서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한 영웅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이와 비슷한 경로로 쓰인 책은 무수하게 많은데 그것을 보면 우리나라가 메타픽션이 가장 왕성하게 창작된 나라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쉬운 것은 그렇게 창작된 ‘팩션’들이 소설로 완성되지 못하고 많은 가정에서 소중히 모시는 족보의 증빙자료로 쓰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물론 진실을 밝히자면 그 반대이긴 하다. 족보를 위해 온갖 팩션이 동원되었으니까.

재주 있는 동년배의 작가가 구속되었다는 뉴스는 착잡했다. 작가가 포승을 받을 온당한 사유는 필화밖에 없다고 믿는 나로서는 아연한 일이기도 했다. 본래 예술가란 좀 비현실적인 인간들이어서 현실의 범죄 영역에 들어가는 일은 좀처럼 쉬운 게 아니다. 거짓말을 꾸미기 위해 골몰하는 소설가의 영토는 소설 속이지 그 밖은 아니기 때문이다. 도둑질과 사기로 감옥살이를 했던 오 헨리도 작가가 되기 전의 일이었고 도박과 돈을 구걸하는 거짓 편지를 남발했던 도스토옙스키 역시 오히려 비현실 속으로 도피한 인물이지 않았을까. 그런데 작가가 현실 속에서 직위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거짓을 행한다는 것은 실로 비참한 일이다. 이제는 사어처럼 잊힌 단어가 되었지만 두루뭉술하면서도 비수 같던 말, 작가정신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기왕 비판을 하자면 동업자를 택하는 게 나을 듯해서 이인화를 예로 들었지만 근자에 벌어진 국정농단 사태의 주인공들이 펼치는 화려한 거짓말의 향연은 놀라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끈질기고도 애절하게 거짓을 늘어놓을 수 있는 것인지. 거짓이라도 실로 진정성 넘치는 거짓말이었다고 찬사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어쩌면 그들끼리 은밀하게 ‘완벽한 거짓말 지침서’를 돌려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이 있다면 정말 필요한 사람은 나 같은 삼류 소설가일 텐데.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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