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 때 원전사고가 발생했던 후쿠시마(福島)현 시골마을이 지난달 30일 깊은 정적에 휩싸였다. 방사능 피폭위험을 무릅쓰고 마을병원에 남아 환자들을 치료해온 80대 의사가 뜻밖의 화재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존경받던 노의사의 참변에 지역민들은 큰 슬픔에 빠졌다.
4일 아사히(朝日)신문 등에 따르면 후쿠시마현 다카노(高野)병원 다카노 히데오(高野英男ㆍ81) 원장이 지난달 30일 병원 내 원장 사택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진 채 발견됐다. 정확한 화재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병원은 원전사고가 터졌던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20~30㎞쯤 떨어진 후타바(雙葉)군 히로노마치(廣野町)에 위치해 있다. 사고 후 후타바군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병원급 의료기관이다.
히로노마치 지역은 원전사고 당시 자율적 피난대상인 ‘긴급시 피난준비구역’으로 지정됐지만, 다카노 원장은 병상의 환자들을 외면할 수 없다며 피난권유를 뿌리친 채 진료를 계속했다. 이 병원은 내과, 정신과, 신경내과, 소화기내과 진료를 하고 118개 병상을 갖췄지만, 다카노 원장이 유일한 상근의사였다.
간혹 비상근 의사의 도움을 받았지만 다카노 원장은 환자들의 곁을 계속 지켰고 화재사고 발생 당시에도 환자 102명이 입원해 있었다. 병원 관계자는 “원장님은 늘 진료에 몰두하는 일상을 행복해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마을 주민들은 노의사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망연자실하면서도 진료를 맡아줄 다른 의사를 찾느라 발을 구르고 있다. 인근 지역 의사들이 잠시 돕겠다고 나섰지만 상근할 의료 인력은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60㎞ 정도 떨어진 미나미소마(南相馬)시 의사들이 ‘다카노병원 지원모임’을 만들어 자원봉사자를 수소문하고 있다.
병원 이사장이며 다카노 원장의 딸인 미오(己保)씨는 “군내 유일하게 남아있던 의료기관으로서, 지역의료의 불을 꺼트리지 않도록 분투하고 있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할 일은 해나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유지를 잇기 위해 지역의료 현장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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