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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게 어때서? 새해엔 '보디 포지티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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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게 어때서? 새해엔 '보디 포지티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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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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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가 주입시킨 비현실적 미의 기준은 현재의 내 몸을 끊임없이 부정하게 만든다. 새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이어트보다 자기 몸 긍정(The Body Positivity)의 태도. 아름다움은 저울 위 숫자가 아니라 한 인간이 지닌 태도다. 게티이미지뱅크
미디어가 주입시킨 비현실적 미의 기준은 현재의 내 몸을 끊임없이 부정하게 만든다. 새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이어트보다 자기 몸 긍정(The Body Positivity)의 태도. 아름다움은 저울 위 숫자가 아니라 한 인간이 지닌 태도다. 게티이미지뱅크

새해 첫 주. 헬스장마다 인파가 넘친다. 연말이면 안개처럼 사라졌던 사람들이 고작 달력 위 숫자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썰물처럼 몰려든다. 올해는 기필코 살을 쪽 빼 전지현 같은 실루엣을 뽐내보리. 현재의 내 몸은 오답이다. 일평생 지속되는 오류다. 이 오류를 수정하지 않는 이상 나의 아름다움은 유예되고 보류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지난해에도, 그 이전 해에도, 똑같은 결심을 하지 않았던가. 도대체 언제까지 내 몸은 오답이어야 하나. 완벽한 아름다움이라는 그릇된 허상에 눈 멀어 어쩌면 자기 안에 이미 있는 아름다움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내 몸이 오답이라는 생각이야말로 오답일지 모른다. 새해를 맞는 결심으로 다이어트보다 자기 몸 긍정주의(The Body Positivity Movement)가 새삼 더 필요한 때다.

지난해 플러스사이즈 모델 최초로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표지에 등장한 애슐리 그레이엄. 애슐리 그레이엄 페이스북
지난해 플러스사이즈 모델 최초로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표지에 등장한 애슐리 그레이엄. 애슐리 그레이엄 페이스북

뚱뚱해도, 주름져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자기 몸 긍정주의는 최근 1, 2년 사이 전 세계 미디어와 패션업계를 강타하고 있는 새로운 흐름이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과 시니어 모델의 잇단 파격 기용으로 드러난 이 움직임은 가혹하도록 획일화된 미의 기준에 더 이상 자아 정체성이 훼손되도록 방치하지 않겠다는 대중의 의지가 산업의 판도마저 변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특히 다양한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이 패션, 뷰티업계에서 맹활약하며 건강한 신체 이미지 구축을 위한 새로운 트렌드의 토대를 마련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미국 플러스 사이즈 모델 애슐리 그레이엄. 살찐 여성도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황홀하게 입증한 그의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자. 1월 자신을 똑닮은 바비 인형까지 출시시키며 바비월드에 리얼리티를 불러들인 그레이엄은 플러스 사이즈 모델 최초로 미국 스포츠 주간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수영복 특집호에 표지모델로 등장했다. ‘두꺼운 허벅지가 생명을 구한다(#thickthighsaveslives)’는 해시태그를 달고 활발한 소셜미디어 활동을 펼치는 동시에 엘르, 하퍼스바자 같은 패션매거진에도 자주 출연했다. 그 공로로 패션지 글래머가 선정한 ‘2016년 올해의 여성’ 명단에 이름을 올린 데 이어 새해에도 보그 영국판 신년호 표지모델로 한 해를 시작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 한 해 다방면에서 플러스 사이즈 모델의 위엄을 보여준 애슐리 그레이엄. 로이터 뉴스1
지난 한 해 다방면에서 플러스 사이즈 모델의 위엄을 보여준 애슐리 그레이엄. 로이터 뉴스1

그가 보그 영국판 신년호에 기고한 ‘2017년이 사이즈 너머의 아름다움(beauty beyond size)의 해인 이유’라는 글에는 자기 몸 긍정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 트렌드인지 절실하게 드러나 있다. 그는 “내 모든 살집과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나답다는 것이 어떻게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으로 여겨졌는지 경이롭다”며 “완벽에 대한 추구와 필터들에 의해 가동되는 세계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간다는 것이야말로 아방가르드한 것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어 “보그 표지모델이 되어 가장 보람 있는 것은 나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삶들이 변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라며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 덕분에 그간 지워진 존재였던 수많은 현실의 여성들이 자기 존재와 정체성을 복구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수천 명의 여성들로부터 더 이상 자신을 안 보이는 존재처럼 느끼지 않고, 이제 테이블에 자기 자리가 있다고 느낀다는 말을 듣는다. 장벽을 부순 보그 표지가 내게 이토록 중요한 이유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승리이며, 변화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우리 목소리를 사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예시다. 사이즈와 형태가 어떻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그건 하나의 권리다. 어린 시절 엄마는 내게 말했다. 당당한 것이 섹시한 것이라고. 당당함이야말로 나의 가장 매혹적인 부분이라고.”

살쪘거나 말랐거나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몸을 긍정하는 당당한 태도가 중요하다는 비비안의 광고 캠페인. 유튜브 화면 캡처
살쪘거나 말랐거나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몸을 긍정하는 당당한 태도가 중요하다는 비비안의 광고 캠페인. 유튜브 화면 캡처

보다 다양한 아름다움을 찾아서

한국 사회에도 자기 몸 긍정의 바람은 불고 있다. 특히 지난 두 해는 페미니즘의 강한 자장이 한반도 남쪽 지역에 형성된 시기다. 타인의 몸-특히 여성의 몸-에 대해 누구라도 경찰이 될 수 있는 세계에 살며 오래 누적된 불만과 분노가 한국 대중문화의 혹독한 미적 억압과 더 이상 병존하기 어려워졌다. 수많은 광고와 잡지가 여성혐오라는 빗발치는 항의와 비난 속에 고개를 숙였다. 너무 살쪄서, 너무 말라서, 키가 너무 작아서, 키가 너무 커서 너는 오답이라는 얘기를 더 이상 예전처럼 쉽게 내뱉을 수 없는 풍토가 조성된 것이다.

영리한 브랜드들은 여성의 새로운 욕망을 간파하고 기민하게 움직였다. 지난해 가을 시작된 속옷 브랜드 비비안의 ‘헬로, 마이 핏(Hello, My Fit)’ 광고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여신 미모의 현현이 아니고서야 노릴 수 없었던 속옷 브랜드의 광고가 자기 몸 긍정을 내세우며 있는 그대로의 당당함을 찬미한다. 다양한 몸매의 모델들이 등장해 ‘있는 그대로의 나’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내용이다. 추구해야 할 멋진 몸매라는 획일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여성들이 체형에 관계없이 아름다움 핏을 가지고 있다는 메시지다. 온라인 누적 조회수가 660만회를 넘어섰을 정도로 인기다.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메인 모델 하지원은 지나치게 아름답고 날씬하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이번 캠페인을 담당한 비비안 홍보마케팅실 문연지 과장은 “광고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자기 몸 긍정주의의 핵심은 여성의 당당함”이라며 “내 안의 당당한 아름다움을 찾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하지원이라는 배우가 가진 진취적 기상과 당당한 캐릭터가 이에 이 취지에 잘 맞는다는 설명이다.

몸에 대한 인식 변화는 속옷을 고르는 조건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비비안이 지난 11월 만 20~39세 여성 300명을 대상으로 소비자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그간 여성 속옷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졌던 볼륨감은 속옷을 고르는 요소로 29%만이 중요하게 생각해 4위에 그쳤다. 1위는 50%가 선택한 착용감, 2위는 37%가 응답한 자유롭고 편한 활동감이었다. 속옷이 남에게 보여지기 위한 옷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옷으로 성격이 크게 변한 것이다.

아름다움은 다양하고, 다양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아름다움은 다양하고, 다양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자기 몸 긍정을 둘러싼 오해

자기 몸 긍정주의는 도달하기 험난한 목표다. 남의 몸까지는 흔쾌히 긍정할 수 있다. 아름다움의 기준을 넓히고 다양화하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동조한다. 하지만 내 굵은 허벅지를 보며 ‘얘가 세상을 구할 거야’라고 진지하게 믿기는 어렵다. ‘날씬한 몸=아름다운 몸’이라는 도식이 너무 깊이 내면화돼 있어서다.

현재 한약 다이어트 중인 대학생 이유리(25ㆍ가명)씨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을 보면 대단하고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내 허벅지의 셀룰라이트를 보면서 ‘아, 너무 두꺼워’ 대신 ‘내 거니까 아름답군’ 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김수경(29ㆍ가명)씨도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변화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솔직히 나는 날씬했으면 좋겠다”며 “미적 기준을 그냥 각자에 맡겨두고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는 게 최선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당당함이란 미적 자원을 누구나 쉽게 갖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많은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그저 살이 찐 것 말고는 타고난 모태 미녀들이라는 점 때문에 ‘이 와중에 예쁘네’라는 낙담을 안기는 것도 사실이다. 애슐리 그레이엄이 패션계의 핫 아이콘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보다 비만인구가 많고, 인종이 다양한 미국에서는 그래서 플러스 사이즈 모델 역시 획일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개가 백인이며, 그저 사이즈가 좀 클 뿐 허리가 잘록한 콜라병 몸매인 것은 매한가지라는 것이다. 플러스 사이즈라기엔 너무 날씬하며, 살이 쪄야 할 곳에 제대로 찐 모래시계 몸매라는 비판과 분노가 높다. 트위터에는 “조롱박처럼 잘록해야 자기 몸 긍정/ 사과처럼 둥글면 자기 몸 부정, 그래도 쇄골은 보여야 자기 몸 긍정/ 두 턱은 자기 몸 부정. 퍽이나 자기 몸 긍정이다” 같은 분노의 글들이 줄곧 올라온다.

자기 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떨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고 긍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자기 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떨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고 긍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자기 몸 긍정이 한낱 정신승리라는 비아냥과 아름다움을 상상하는 창의력 부재라는 비판이 서로를 공격한다. 긍정하겠다는 의지와 아름다워야 한다는 강박 사이에서 스텝이 자주 꼬인다. ‘자기 몸 긍정을 위한 패션라인’ 창립자인 디자이너 맬로리 던은 그래서 “자기 몸 긍정이 1년 365일 자기 자신을 아름답고 대단하다고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자기 몸 긍정은 불가능한 미적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않는다는 것이지 자기 외모의 모든 측면에 경탄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라며 “소파에 앉아 하루 종일 정크푸드를 먹으며 자신을 돌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건 오해”라고 말했다.

갈 길은 아직 멀지만, 자기 몸 긍정이 일보 진전인 것은 분명하다. 뚱뚱하면 절대로 아름다울 수 없다는 장벽 하나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한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판정이 그동안 너무 손쉽고 게으르게 이뤄졌다. 미의 원본을 정해두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몸들을 엄격하게 오답 처리해온 세태에 종지부를 찍을 필요가 있다. 남들은 못 보는 타인의 색다른 아름다움을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발굴해 보았던가. 아름답게 생긴 사람보다 아름답게 행동하는 사람이 더 매혹적이었던 적이 있다면, 미인의 육체보다 미인의 정신에 더 끌린 적이 있다면, 아름다움은 태도라는 말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새해를 맞아 여전히 헬스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보디 포지티브’를 영접했다면 그 마음이 전과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변해림 인턴기자

‘플러스 사이즈’가 아니라 ‘내 사이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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