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 조류독감으로 살처분 되는 가금류가 2,000만 마리에 육박하고 있다고 썼다. 2주 만에 ‘2,000만 마리’가 ‘3,000만 마리’가 되었다. 재앙이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어디에 있는가. 3,000만은 숫자가 아니라 명백한 생명의 무게이다. 모두가 국가 컨트롤타워의 부재, 초동대처의 부실을 말한다. 구제역, 세월호, 메르스, 조류독감 등 지난 몇 년 간의 국가적 재난 때마다 반복되는 지적이다. 조류독감은 우리나라에서 2003년에 처음 발생해서 올해로 여섯 번째이다. 반복되어 발생한다면 방역 체계의 매뉴얼이 작동해서 살처분 숫자가 줄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반대로 늘고 있으며, 올해는 대재앙 수준으로 살처분을 하고 있다. 피해 규모도 이미 1조 원을 넘었다.
3,000만 마리의 살처분.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숫자는 개체화되어야 비로소 우리 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시리아의 참상이 안타깝지만 내 일상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남의 나라의 일이었다. 그러다가 알레포에 사는 8세 소녀 알라베드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그곳의 비참함이 느껴졌고, 함께 슬퍼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조류독감으로 인한 3,000만 마리의 죽음은 구체적으로 기억되기가 어렵다. 동물들은 자신의 처지를 인간의 말로 설명하지 못하고,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알을 낳는 닭, 30일 만에 잡아 먹히는 닭, 오리’ 등 사용 용도로 분류될 뿐 개체화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에서 2012년 발간한 무크지 ‘숨’은 구제역, 조류독감 등으로 인해 생매장되는 농장동물들에 대해 다뤘다. 책에 나오는 꼬마돼지 순결이 덕분에 독자들은 살처분 된 동물을 숫자가 아닌 생명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경기도 파주의 동물복지형 농장에서 80마리의 돼지와 살고 있는 순결이는 젖을 막 뗀 생후 두 달 된 새끼돼지였다. 이곳의 돼지들은 각자 이름이 있고, 다른 농장의 돼지들처럼 이빨이나 꼬리도 잘리지 않고, 본래 돼지의 습성대로 진흙과 볏짚에서 뛰놀며 지냈다. 그런데 순결이네 농장을 취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했고, 순결이네 농장에도 ‘예방적’ 살처분 명령이 내려졌다. 그렇게 갓 태어난 순결이와 농장의 돼지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누구도 질병에 걸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대재앙 한복판의 현장 노동자들도 또 다른 지옥에 있다. 올해도 공무원이 과로로 사망했는데, 2011년 구제역 파동 때도 과로, 사고 등으로 10여 명의 사상자가 생겼다. 책 속 공무원 노조원에 따르면 가축 전염병이 발생한 지역의 공무원들은 대부분 살처분, 방역 현장에 투입되는데 무엇보다 자신의 손으로 가축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경험 때문에 정신적 고통이 심했다. 죽지 않으려고 도망가는 동물들을 생매장터로 혹독하게 몰아넣는 도살자가 되어야 했다. 누가 이들에게 이런 지옥 같은 노동을 강요할 수 있는가.
가축 전염병의 빈발 원인 중 하나는 공장식 축산이고, 대안은 동물복지 농장으로의 전환이다. 그러려면 소비자는 동물성 식품을 조금 더 비싸게 구입하고, 조금 덜 먹어야 한다. 살처분 뉴스에 눈살을 찌푸리기 전에 나에게 물어야 한다. 내 삶의 변화가 필요한 일. 가능할까? 이 이야기는 다음에 좀 더 길게 나눌 것이다.
정부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조류독감 확산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라’는 방침을 내렸다. 하나마나 한 소리, 발생 지역을 뒤쫓아 가면서 살처분 하는 게 대책인가. 그런 말 대신 현장에 가보라. 서류로 보고 받는 살처분 숫자가 생명임을, 현장에서는 인간과 동물 모두 사투를 벌이고 있음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동물이니 어쩌겠어’라는 낮은 생명의식이 만연했을 때 사회는 생지옥이 된다. 최근 조류독감이 발생한 산란계 밀집 지역에서 사망한 고양이들에게서 조류독감 양성이 확인된 후 일부 언론에서 살처분 운운하는 기사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약자에 대한 반생명적 행위가 일상화된 사회는 인간도 위험한 사회임을 잊으면 안 된다.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숨-농장동물에게 질병을 허하라’,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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