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행사장서 따로 만나
“삼성이 협회장 맡아 지원” 요청
절차 늦어지자 2차 독대서 닦달
박 대통령 “현정권서 후계문제 해결을”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9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독대를 갖고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 딸인 정유라(21)씨의 승마훈련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거론됐던 2015년 7월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보다 10개월 전에 이미 ‘정유라 지원’ 문제가 양측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박영수(65) 특별검사팀은 또,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내 임기 내에 삼성의 지배구조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한 정황도 포착했다. 특검팀은 이러한 정황상 최씨 측과 삼성이 맺은 220억원대 지원 계약에 대가성이 뚜렷하다고 보고 있다.
2일 특검팀과 사정당국 등에 따르면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이 열린 2014년 9월 15일,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 참석한 이 부회장과 따로 짧은 시간 동안 독대를 가졌다. 특검팀은 당시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삼성이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아 달라.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승마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도록 좋은 말도 사주고, 훈련비도 지원해 달라”고 했다는 삼성 관계자들의 진술을 확보했다. 최씨의 부탁을 받은 박 대통령이 승마협회라는 ‘우회로’를 내세워 삼성 측에 정씨에 대한 금전적 지원을 요구했다는 게 특검팀의 판단이다. 6개월이 지난 이듬해 3월,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승마협회 회장에 취임했다.
하지만 삼성의 ‘승마훈련 지원’은 더디게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이 2015년 7월 25일 이 부회장과의 2차 독대에서 “승마훈련 지원이 좀 소홀한 것 같으니 좀더 신경 써달라”고 재차 압박을 가했다는 삼성 관계자들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최씨의 조카 장시호(38ㆍ구속기소)씨가 운영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한 지원 문제가 논의됐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박 대통령은 특히 이 자리에서 “현 정부 임기 내에 삼성의 후계 승계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안종범(58ㆍ구속기소)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준비한 ‘대통령 말씀자료’에 이 같은 내용이 기재된 사실을 확인했다. 작년 삼성그룹 최대 현안이었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과 관련,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표를 던져 이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작업이 사실상 마무리되도록 청와대 측이 힘을 쓴 사실을 넌지시 암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검팀은 문형표(61ㆍ구속)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안 전 수석 등의 지시를 받아 국민연금에 ‘찬성표를 행사하라’고 외압을 가한 사실을 확인한 상태다.
특검팀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2015년 8월 말 삼성이 최씨의 독일 법인(코레스포츠)과 맺은 220억원대 지원 계약의 대가성을 입증하는 연결고리로 보고 있다. 전날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자신과 최씨, 삼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제3자 뇌물죄’ 수사에 대해 “완전히 나를 엮은 것”이라고 혐의를 부정한 것은 ‘상식 밖의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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