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작성 의혹에 대한 박영수(65)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숨돌릴 틈도 없이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있다. 앞서 진행된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때에는 제대로 건드리지 못했던 부분이지만, 특검팀은 연일 관련자들을 줄소환하는 등 수사의 고삐를 바짝 죄는 모습이다. 의혹의 정점에 있는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피의자 소환’도 시점이 문제일 뿐, 이미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의 국정농단 사건의 한 줄기인 ‘블랙리스트’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는 지난해 12월 26일 김 전 실장과 조윤선(51)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의 압수수색으로 포문을 열었다.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등의 주거지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문체부 실무자들의 진술, 압수물 분석과정을 통해 특검팀은 2014년 블랙리스트가 ‘청와대 정무수석실→교문수석실→문체부’의 순서로 전달된 사실을 파악했다.
이튿날인 12월 27일, 특검팀은 정무수석실 국민소통비서관을 지낸 정 전 차관 소환을 시작으로 거의 매일 관련자들을 줄줄이 부르고 있다. ▦28일 김상률 전 수석,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29일 모철민 주프랑스대사(전 교문수석), 용호성 주영국한국문화원장 ▦30일 김종덕 전 장관 ▦31일 김희범 전 문체부 1차관, 김낙중 주로스앤젤레스총영사관 한국문화원장 등이 소환됐다. 2일에는 송광용 전 교문수석도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특검팀은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조 장관의 가담 사실도 이미 확인했다. 조 장관은 작년 11월 30일 국정조사 기관보고에서 “(블랙리스트는) 전혀 제 소관업무도 아니고, 저는 전혀 관여한 바도 없고, 그런 사실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고 밝히는 등 줄곧 자신의 연루 사실을 부인해 왔다. 그러나 특검팀은 지난 30일 ‘최순실 게이트’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조 장관을 위증 혐의로 고발해 달라고 요청, 이 같은 해명이 거짓이라는 물증과 진술을 확보했음을 명확히 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조 장관의 문체부 장관 취임 직후 “부처 내의 블랙리스트 관련 문건을 파기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특검팀은 이번 주중 조 장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파죽지세로 진행 중인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에서 최대 관심사는 역시 김 전 실장의 지시 여부다. 청와대 정무수석실과 교문수석실이 사실상 총동원된 것으로 드러난 지금까지의 모든 정황은 그 꼭대기에 ‘청와대 2인자’였던 그가 자리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때문에 김 전 실장의 소환 역시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최씨의 국정농단에 그가 광범위하게 개입했다는 의혹도 여전해 좀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특검팀은 블랙리스트가 최씨 사업에 걸림돌이 될 만한 인사를 배제하는 데 이용된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져, 이번 수사의 종착역은 김 전 실장이 아니라 최씨와 박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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