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현실의 반영이다. 상식과 도덕이 무너진 이 시대에 안방극장이 꺼내든 화두는 다시 ‘정의’다. 권력을 비판하고 사회적 울분을 품어낸 신작 드라마들이 새해 안방에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SBS에서 드라마 ‘추적자’와 ‘황금의 제국’ ‘펀치’ 등 ‘권력 3부작’을 선보였던 박경수 작가가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3월 방영)로 돌아온다. 국내 최대 로펌을 무대로 돈과 권력의 패륜을 파헤치는 이야기다. 거대 권력에 맞선 개인의 투쟁을 통해 한국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했던 박 작가가 정치적 격동의 시기에 어떤 이야기로 시대적 통찰을 보여줄지 방송가 안팎의 기대가 쏠리고 있다. 의학드라마에서 경찰드라마로 한 차례 전면 수정됐던 이 드라마는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인물과 소재 등을 다시 손질한 것으로 전해진다.
‘귓속말’에 앞서 ‘낭만닥터 김사부’의 후속으로 방영되는 ‘피고인’(23일 첫 방영)도 사회성이 짙은 작품이다. 아내와 딸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된 검사 박정우(지성)가 진실을 찾기 위해 감옥 밖으로 나와 진범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쌍둥이 형을 죽이고 형의 삶을 대신 사는 재벌 2세 차민호(엄기준)가 그 대척점에서 선악구도를 이룬다. 그동안 드라마 안에서 정치인, 기자와 함께 3대 부패 세력으로 그려지던 검사가 정의 구현의 주체가 된다는 점이 자못 흥미롭다. ‘피고인’ 뿐만 아니라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박혜련 작가가 올해 선보이는 신작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서도 불행한 사건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검사가 등장해 극을 이끈다.
지난해 판타지 멜로 장르를 접목해 인기를 끌었던 사극은 다시 현실로 눈을 돌려 동시대와 소통한다. 윤균상이 주인공으로 발탁된 MBC 새 월화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30일 첫 방영)은 조선 연산군 시대에 실존했던 홍길동의 일대기를 담는다. “허균의 소설 속 도인 홍길동이 아니라, 비천한 신분으로 가진 자들의 횡포에 맞서며 민심을 얻은 실존인물 홍길동의 의로운 삶을 통해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 짚어보겠다”는 게 제작진의 의도다.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는 대선 정국과도 맞물리는 주제다. 유승호와 김소현이 출연하는 ‘군주: 가면의 주인’(5월 방영)은 1700년대 물을 사유해 강력한 부와 권력을 얻은 조직 편수회에 맞서 싸우는 왕세자의 사투를 그리며 정의로운 권력에 대한 시청자들의 갈망을 녹여낸다.
MBC 새 수목드라마 ‘미씽 나인’(18일 첫 방영)은 현재 한국 사회를 얘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재난을 다뤄 눈길을 끈다. 전대미문의 항공기 추락사고가 발생해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 9인의 생존기를 통해 재난에 대처하는 인간군상의 다양한 이면을 드러내는 동시에 사고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이 그려진다. KBS2 ‘김과장’(25일 첫 방영)은 ‘삥땅 전문’ 경리과장이 더 큰 한탕을 노리고 입사한 회사에서 뜻밖의 부정과 불합리에 맞서게 되는 이야기로, 장르는 코미디이지만 그 안에 담긴 주제 의식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사회적 공분이 심화되면서 드라마 창작자들 사이에서 이를 끌어안으려는 기획이 활발했는데 그 결과물이 하나씩 나오고 있다”며 “드라마가 사회 문제를 직시하는 건 최순실 게이트에 맞닥뜨린 지금의 시대 정신과도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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