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오 측근 “박씨가 말했다”
특검 “대통령 재가 없이 지시 불가
뇌물죄 혐의 입증 충분” 판단
이재용 부회장 수사에 화력 집중
삼성, 관련 의혹 전면 부인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영수(65) 특별검사팀이 최순실(61)씨의 측근인 박원오(67)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가 “삼성이 최씨의 딸 정유라를 지원하는 이유는 (최씨 측이) 합병을 도와줬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다는 승마협회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했다. 삼성이 정유라(21)씨 승마훈련 지원 명목으로 최씨 소유 독일 법인과 220억원대 계약을 맺은 것이 ‘합병 찬성에 따른 대가’라는 진술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일 “뇌물죄는 (특검이) 엮은 것”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특검팀은 혐의 입증이 충분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겨냥한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정당국에 따르면 특검팀은 최씨와 삼성그룹의 뇌물성 거래 의혹을 수사한 검찰 수사기록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최씨와 삼성간 지원계약이 지난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도와준 대가라는 박 전 전무의 측근 A씨의 진술을 확인했다. 정씨의 승마훈련을 도와준 것을 계기로 최씨의 최측근이 된 박 전 전무는 정씨의 독일 전지훈련 계획을 삼성에 제안하는 등 최씨와 삼성간 가교 역할을 한 인물로 지목됐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8월 최씨의 독일법인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와 승마선수 훈련지원 등의 명목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A씨는 박 전 전무와 함께 실무를 맡았다.
A씨는 검찰에서 삼성이 정씨를 지원한 이유에 대해 박 전 전무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진술했다. ‘삼성이 왜 정유라를 지원하는지 모르겠다’는 취지로 박 전 전무에게 묻자 “최씨가 합병을 도와줬기 때문에 삼성에서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대답을 들었다는 것이다. 특검팀은 A씨의 진술 등을 바탕으로 삼성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직결된 합병과 관련해 최씨로부터 도움을 받은 뒤, 그 대가로 ‘뇌물’을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7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은 자문업체의 반대 권고에도 불구하고 투자위원회를 열어 삼성 오너 일가에 유리하도록 합병 찬성표를 던졌다. 최씨가 박 대통령을 통해 당시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국민연금에 합병찬성 압력을 가하도록 하고, 다른 쪽으로는 박 전 전무를 움직여 삼성 측으로부터 지원을 받아냈다는 게 특검팀이 파악한 이번 사건의 골격이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의 지시가 없이는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안 전 수석이 대통령 재가 없이 독자적으로 문 전 장관에게 지시를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안 전 수석의 업무일지에서 발견된 ‘삼성 합병 문제를 적극 도와주라’는 취지의 메모도 주요 근거가 되고 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제3자 뇌물죄 입증 퍼즐이 사실상 완성됐다는 얘기다.
특검팀은 다만 이 같은 ‘검은 거래’에 이 부회장이 직접 개입했는지는 좀 더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삼성은 이 부회장이 최씨를 지원하도록 지시하거나 관련 업무에 관여한 적이 없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가결 후 8일 후인 작년 7월 25일 박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최씨 모녀 지원방법이나, 최씨 조카 장시호(38)씨가 운영한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지급과 관련한 이야기가 오갔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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