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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 갖춘 붉은 닭, 신새벽 열고 만물을 다 이룬다

입력
2017.01.0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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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을 알리는 상서로운 동물

위대한 지도자 등장이나

새로운 시대 탄생으로 해석

仁ㆍ義ㆍ禮ㆍ智ㆍ信 갖춘 길조

명예와 출세의 상징되기도

폐백닭 풍습은 자손번창 의미

울음소리로 농사 풍년 점치고

망자의 영혼을 인도하는 존재

서양서도 상서로운 수호신

‘최순실 게이트’ 관련 집회ㆍ시위 등에서 대통령을 풍자ㆍ조롱하는 용도로 이용된 닭. 억울함이 채 가시기도 전 무서운 속도로 조류독감(AI)이 확산되며 여러모로 우울한 연말연시를 보내고 있다.

고문헌 등에 따르면 닭은 “만물이 늙은 것”(사기)이자, “가득 찬 것”(회남자)이고, “늙어서 모든 것을 수렴하는 것”(백호통)이라 하였다. 만물이 다 이뤄져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일컫는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 붉은 닭의 해가 밝았다.

아침을 여는 상서로운 동물, 닭

금계도(19세기), 나무 아래 닭 한 쌍이 떠오르는 해와 조화를 이룬다. 닭은 예로부터 여명을 알리는 상서롭고 신비한 동물로 여겨졌다. 온양민속박물관 제공
금계도(19세기), 나무 아래 닭 한 쌍이 떠오르는 해와 조화를 이룬다. 닭은 예로부터 여명을 알리는 상서롭고 신비한 동물로 여겨졌다. 온양민속박물관 제공

십이지(十二支)의 열 번째 동물인 닭은 오후 5시에서 7시를 가리키지만 존재감을 발휘하는 순간은 단연 동 틀 무렵이다. 시계가 없던 시절, 때맞춰 울어주는 닭은 사람에게 참으로 기특하고 고마운 존재였다. 닭은 여명을 알리는 상서로운 존재였고, 그래서 울음소리 역시 길조로 여겨졌다.

신통하고 신비로운 동물인 닭의 울음소리는 위대한 지도자의 등장이나 한 시대의 도래, 새로운 국가의 탄생으로 해석되곤 했다. 일제에 항거한 시인 이육사는 ‘광야’에서 말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예로부터 닭은 유교에서 인의예지신, 오덕(五德)을 갖춘 동물이라 칭송 받았다. “먹을 것을 보면 서로 나눠 먹으니 인(仁)이요,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으니 의(義), 의관을 단정히 하는 것은 예(禮)이고, 항상 경계해서 지켜내니 지(智)가 있으며, 어김없이 때를 알려주니 신(信)을 가졌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 유학자 하달홍은 ‘축계설’에서 고사를 인용하며 “닭은 머리에 관(볏)을 썼으니 문(文), 발톱으로 공격하니 무(武), 적을 보면 싸우니 용(勇), 먹을 것을 보면 서로 부르니 인(仁), 어김없이 때를 맞춰 우니 신(信)”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 화가 변상벽은 고양이와 함께 닭을 잘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병아리 여러 마리와 함께 있는 닭은 인(仁)의 정신과 함께 자손 번창 등을 상징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조선 후기 화가 변상벽은 고양이와 함께 닭을 잘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병아리 여러 마리와 함께 있는 닭은 인(仁)의 정신과 함께 자손 번창 등을 상징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고서에도 닭이 자주 등장한다. 고양이를 잘 그렸다 알려진 화가 변상벽은 닭 그림으로도 유명했다. 화폭에 담긴 여러 마리 병아리와 함께 먹이를 먹는 닭은 인의 정신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오복(五福) 중 하나인 자손번창이나 ‘자식을 훌륭하게 키웠다’는 ‘오자등과(五子登科)’로 해석된다.

혼례 시 시댁에 폐백용 닭을 올리거나 사위에게 씨암탉을 잡아주는 관습도 자손 번영과 관련한다. 풍수지리에서도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인 ‘금계포란(金鷄抱卵)’ 형은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힌다. 이곳에 집터나 묘 자리를 쓰면 귀한 자식을 얻고 자손이 번성한다는 것이다.

수저를 보관하는 주머니에 부귀공명을 상징하는 닭이 모란꽃과 함께 수놓아져 있다. 숙명여자대학교박물관, 경운박물관 제공
수저를 보관하는 주머니에 부귀공명을 상징하는 닭이 모란꽃과 함께 수놓아져 있다. 숙명여자대학교박물관, 경운박물관 제공

“머리에 관(볏)을 썼으니 문(文)”이라는 해석처럼 닭은 명예나 출세의 상징이기도 했다. 조선 후기 화가 장승업은 화폭 아래쪽에 닭을, 위쪽에 맨드라미를 그려 넣으며 관 위의 관, 즉 ‘감투를 거듭 쓰며 출세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수탉의 우는 모습을 그린 ‘공계도’는 그 자체로 부귀공명을 상징한다. 이는 공계명(公鷄鳴ㆍ닭의 울음소리)을 줄인 ‘공명’의 발음이 부귀공명의 공명(功名)과 같다는 데 착안한 것이라 알려졌다.

주력 지닌 닭, 길흉을 점치다

새벽이 와야 닭이 우는 것이 아니라 닭이 울어야 어둠이 걷힌다는 오류는 닭을 주력(呪力)을 가진 동물로 인식하는 데 기여했다. 닭의 울음소리로 점치는 것을 계명점(鷄鳴占)이라 한다. 조선 후기의 세시풍속집 ‘동국세시기’에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 꼭두새벽에 첫 번째 우는 닭의 소리에 따라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칠 수 있다고 나와있다. 열 번 이상 울면 농가에 풍년이 들고, 울음소리 횟수가 적으면 흉년이 든다는 것이다.

과거 시험 등 대사를 앞두고도 닭의 울음소리를 헤아렸다. 그 숫자가 많으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혼례 시 닭을 날려 닭이 울면 아들을 얻게 된다거나, 이른 봄 부화한 병아리의 숫자가 한해 농사를 결정한다는 믿음도 있었다.

천상과 지상의 경계에 위치한 까닭에 닭은 영혼과 맞닿은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다. 상여 위에 꼭두닭을 장식한 것 역시 십이지 중 유일하게 날개를 지닌 동물인 닭이 망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보호하며 천상으로 인도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종묘제례에 쓰이는 제기 위에 닭이 그려져 있다. 십이지 중 유일하게 날개가 있는 닭은 천상과 지상을 잇는 동물로 여겨졌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종묘제례에 쓰이는 제기 위에 닭이 그려져 있다. 십이지 중 유일하게 날개가 있는 닭은 천상과 지상을 잇는 동물로 여겨졌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시신이 떠오르지 않을 때 닭을 물에 던지는 풍습도 있었다. 살아 있는 수탉을 짚으로 만든 단 위에 태워 띄우면 시신이 가라앉은 지점에 가 멈춘다고 생각했다. 닭을 제물로 바치거나 제기에 닭을 그린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정유년, 악귀는 물렀거라!

대문 등에 붙이기 위해 목판으로 찍은 닭 그림. 닭은 화를 쫓고 복을 구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삼성출판박물관 제공
대문 등에 붙이기 위해 목판으로 찍은 닭 그림. 닭은 화를 쫓고 복을 구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삼성출판박물관 제공

‘동국세시기’에서는 정월 초하룻날 닭 그림을 창호나 벽에 붙이라 했다. 이는 닭이 악귀를 쫓아내는 기능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화를 막고 복을 부른다 하여 닭은 부적에도 종종 등장하는데, 역사가 선사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알려져 있다. 단순히 닭의 형상을 이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닭의 피로 부적을 그리기도 한다. 제주도 일부 지역에서는 피를 사방에 뿌려 잡신을 쫓는 의식이 행해지기도 했다.

닭을 상서롭고 신비한 동물로 보는 시선은 동서고금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닭을 악마를 물리치는 수호신으로 여겼고, 로마의 집정관은 닭이 먹이 먹는 모습을 보고 로마에 닥쳐올 행복과 불행을 점쳤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는 수탉을 정의ㆍ용기ㆍ평등의 상징으로 삼았고, 아프리카 일부 부족은 흰 수탉을 지팡이 위에 얹어 권위를 과시하는 풍속을 지니기도 했다.

정유년, 닭의 해다. 우울한 연말을 보내고 새롭게 일년을 시작하는 닭의 울음소리가 좋은 일들을 불러오고, 별 탈 없이 무고한 해로 귀결될지는 결국 우리 몫이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 참고자료: 닭의 세계(현축), 십이지의 문화사(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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