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네티즌 수사대’는 혼자 활동하는 외로운 늑대 같은 존재였다. 지난해 ‘크림빵 뺑소니’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 영상판독 전문가,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혐의 증거를 찾아내 유명세를 탄 뒤 세월호 침몰 원인으로 군 잠수함과 충돌 가능성을 제시한 영상물 ‘세월호X’를 공개한 ‘자로’는 ‘네티즌 수사대’로 불렸지만 사실 개인인 수사원에 가까웠다.
하지만 최근 비선실세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활동한 네티즌 수사대는 과거와 다른 모습이다. ‘외로운 늑대형’전문가들보다 다수의 보통 사람들 참여가 두드러졌다. 이들의 활약을 짚어 봤다.
해외 은닉 최순실 재산 행방 쫓는 트위터리안
지난 11월 초 트위터리안 아바리스(@dokiljoomin)는 최씨가 독일에 재산을 은닉했을 가능성을 공개했다. 그는 최씨와 정윤회가 재산을 은닉하기 위해 1990년대 독일에 ‘유벨(Jubel)’이라는 회사를 설립한 사실을 처음 밝혔다.
이후에도 그는 야당 정치인과 함께 독일에서 최씨의 딸 정유라를 함께 찾으러 다니며 스스로 ‘독일 수사팀장’을 자임했다.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독일에서 사업을 한 교민이라고 밝힌 그는 “운전을 하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자료를 찾아보는 등 거의 두달간 맹렬하게 (최씨의 행적을) 뒤졌다”고 말했다.
‘모르쇠’ 김기춘 당황하게 만든 ‘결정적 영상’
이번 네티즌 수사대의 활동 중 특이한 것은 메신저를 이용해 국회의원과 직접 소통하며 활동을 이어간 점이다. 시작은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탄핵 반대 새누리당 의원 명단 공개였다. 이때 국회의원들의 휴대폰 번호가 인터넷에 공유되면서 일부 의원들은 ‘문자 폭탄’을, 일부 의원들은 각종 제보를 받았다.
의원들과 네티즌 수사대의 공조는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궁지에 몰며 빛을 발했다. 김 전 실장은 여야 의원들의 끈질긴 질문공세에도 “최순실을 모른다”고 완강히 버텼다.
그러나 시종일관 ‘모르쇠’로 버틴 김 실장은 네티즌 수사대의 제보로 무너졌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시민의 제보’라며 공개한 2007년 한나라당 후보 검증 청문회 영상에 김 전 실장이 등장한 가운데 최씨의 이야기가 나왔다. 김 전 실장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선거 후보 캠프의 법률자문위원장이었다. 너무나 명백한 물증에 김 전 실장은 “최순실이라는 이름은 이제 보니까 제가 못 들었다고 말할 순 없다”며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이 영상은 인터넷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에서 활동하던 회원이 같은 당 손혜원 의원에게 제보한 것이다. 이 제보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얄팍한 변명으로 빠져나가려는 김기춘 같은 사람들을 그대로 두면 안된다는 생각에 보냈다”고 밝혔다.
‘현상금 2,000만원’정치권-네티즌 합동 ‘우병우를 찾아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청문회 출석도 네티즌 수사대의 힘이 컸다. 우 전 수석은 국조특위 2차 청문회에 불참한데 이어 행방까지 묘연한 상태였다. 이에 국회의원들은 우 수석의 행방에 현상금까지 걸었다. 앞서 청문회에서 네티즌의 영상 제보로 김 전 실장을 궁지로 몰아넣는데 주요 역할을 한 디씨인사이드의 주식갤러리(주갤) 회원들을 비롯한 네티즌들도 우 수석 찾기에 뛰어들며 현상금이 2,000만원을 넘어섰다.
인터넷에 해외 메신저인 텔레그램 계정을 공개하고 직접 네티즌들의 제보를 받았던 손혜원 의원실의 김성회 보좌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텔레그램으로 시민들이 ‘지금 C빌딩 앞에 서 있는데 3층 불이 켜졌다, 4층 불이 꺼졌다’식의 구체적 내용을 제보해 주고 있다”며 “우 전 수석이 미꾸라지처럼 (검찰 수사를) 피해가는 모습에 국민들이 분노를 느끼고 나서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 ‘고령 향우회’인맥도 드러나
청문회 기간 동안 물타기와 논점 흐리기 질문으로 국민들의 질타를 받은데 이어 청문회 위증 교사 의혹까지 제기된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도 네티즌 수사대에게 걸려 곤욕을 치렀다. 지난 22일 열린 5차 청문회에서 박 의원은 이완영 의원과 최순실씨의 법률대리인 이경재 변호사가 술자리에 나란히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경북 고령을 지역구로 둔 이 의원과 고령 출신 이 변호사가 2013년 향우회에서 만난 사진이다. 이 때문에 청문회에서 위증 교사 의혹을 받은 이 의원과 최씨측 변호인과 친분이 드러나며 논란이 일었다. 또 이 의원이 우 전 민정수석의 가족들하고도 친분이 있다는 의혹도 이어졌다.
고령 향우회 사진 역시 네티즌 수사대가 발굴했다. 다음 카페 ‘고령향우회’에 올라와 있던 2013년 사진을 디시인사이드의 주갤 회원이 발굴해 박 의원에게 제보했다.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네티즌 수사대의 활동은 앞으로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법과 제도에서 벗어나 사적인 추적 행위가 일종의 집단린치 아니냐’며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이에 네티즌 수사대와 공조하는 김성회 보좌관은 “누군가를 겁주기 보다 검찰과 국회, 행정부를 압박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공권력을 (네티즌 수사대를 통해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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